▲ 조각가 이재효가 경기 양평에 있는 자신의 전시장 앞에 있는 대표작 나무 도넛형태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무를 이어 붙이고 잘라 만든 작품의 크기는 지름 3m가 넘는다. |
주머니에 200원밖에 없던 남자가 결혼을 했다. 전공이 같았던 부부는 좁은 우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일년뒤 경기 양평군 산골로 이사를 왔다. 나무를 모으고 깎고 다듬고 태우고…. 시골 동네사람들은 젊은 부부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맨날 보던 나무인데,왜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조물조물 그의 손을 거치면 쓰레기도 작품이 된다. 몽당연필, 담배꽁초, 녹슨 기계부품도 ‘야무진 존재’로 살아난다.
15년후,예술가부부부가 들어온 조용한 동네는 활기가 넘친다. 커다란 나무둥치들이 컨테이너로 몇차례 서울과 부산, 중국,일본으로 실려나가고 도시사람들로 북적인다. 작업장에 일하는 사람은 14명. 동네 노인들은 아르바이트로 작품에 쓰일 나무껍질 벗기는 일을 하기도 한다. 최근엔 산중턱에 근사한 건물이 번듯하게 세워졌다. 지난해 시작한 공사는 지난달 완공됐다. 동네 형님 덕분에 구입한 땅에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에 자신과 조각가 아내의 전시장을 만들고 살림집까지 5개동을 지었다. 숨막히게 큰 그의 작품처럼 총건평 500평 규모의 전시장은 여느 미술관 못지 않은 크기와 작품수를 자랑했다.
“이름은 아직 안지었어요. 아니, 짓지 않을려고요. 작품이 많아 미술관으로 보이긴 하지만 개인전시장이죠. 남들이 이재효 작업실이라고 하면 이재효 작업실이고, (부인)차종례 작업실이라고 하면 차종례 작업실이죠.하하.”
“내세울것 없었던” 조각가 이재효(45)는 요즘 행복하다. 마음놓고 작업할 수 있고 시간을 아껴 만든 작품을 멋지게 보관할수 있고 국내·해외에서 전시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3시간, 구불구불 들어온 동네는 초록의 산 품안에 들어앉아 아늑했다. 담쟁이 덩쿨이 껴안고 있는 작업장은 초록덩어리 나무공장 같았다. 열린 문에 들어서니 두껍고 커다란 장작, 드릴과 드라이버,실타래같은 나무뭉치들이 여기저기 모여있다.
작업장 식구들과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린 작가는 ‘노가다’ 일꾼 같았다. 헐렁한 얼룩무늬 군복바지,덥수룩한 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하지만 쏘아보듯 쳐다보는 작고 검은 눈동자는 누구보다 반짝였다. 작업실이 공장같다고 하자 그는 “동네사람들도 작가보다는 이사장,이라고 부른다”며 무심하게 말했다.
1m 2m짜리 나무공 15개가 있는 서울 광장동 W호텔, 여의도 63빌딩과 메리어트 호텔에서 볼수 있는 그의 작품은 보는 순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지?” 최근엔 광화문 청계천 입구에 세워져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국내뿐만 아니다. 미국 라스베가스 MGM호텔, 스위스 제네바 인터컨티넨탈호텔, 중국 파크 하얏트, 독일 그랜드 햐얏트, 오스트리아 크라운 호텔등 세계 유명호텔에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부드러운 곡선과 풍부한 양감으로써 단순한 조형작품뿐만 아니라 가구의 개념에 접근시킴으로써 현대인의 주거공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며 "실생활에 밀착된 조형감각으로 현대인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기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번 설계를 하고 직접 지어, 처음 공개한다는 3층 높이 전시장을 왔다갔다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의 대표작 나무공과 의자 모양 작품부터 불에 태운 나무위에 셀수없이 많은 못을 갈아 만든 작품은 물론, 나뭇가지, 나뭇잎을 줄줄이 꿰어 일렬로 세운 작품까지 전시장은 ‘뭉치면 산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했다.
▲ 불에 태운 나무위에 셀수 없이 많은 스테인레스 못을 구부려 만든 작품에는 작가의 암호같은 숫자사인도 담겨 있다. 01은 ‘이’, 21-1은 ‘재’, 110=1은 ‘효’를 왼쪽으로 뒤집어 놓은 형태다. |
―왜 이렇게 모아, 모아서 만드나.
▲재료가 하나하나 뭉쳐서 나오면 느낌이 배가 되는데 더 커지면 그 느낌이 더 강해진다. 광화문에 빨간옷 입은 사람들이 몇백명 모였을때 엄청난 힘이 나오지 않는가. 재료가 가진 작은 에너지를 극대화시키려한다. 모였을때 힘이 배가되니까 자꾸 그 그 느낌을 찾아간다.
―나무작품은 공같기도 하고 도넛같기도 하다.
▲동그란 작업은 (홍익)대학 졸업하던해에 시작됐다. 와우산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천장에 매달아 졸업작품전에 출품 했다. 나무작업 스케치는 대학교 3학년때부터 그렸고 실제적으로 보인것은 92년부터 하게됐다.톱으로 1m짜리 공을 만든것이 시작이었다. 하나씩 두개씩 엮어놓고 자르고 붙이고 껍질이 있는채로 했다. 둥근형태는 좌우대칭으로 난이도는 있지만 재료전달에 있어서 둥근형태가 가장 좋다. 내 작업은 재료가 가진 성질을 보여주는게 우선이다. 군더더기가 있으면 안된다. 젊을때는 더하는 과정이지만 나이가 들면 결국에 다 빼내지 않나. 작업은 더하기 빼기 과정이다. 나는 좀 더 빨리 뺀거 같다.
―둥근 형태는 매끈하면서도 부드러워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공갈빵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굉장히 무겁다. 원지름 3m짜리는 3t이나 된다. 나무무게도 있지만 나무를 엮은 철제프레임도 있어서다. 멀리서보면 부드러워보이지만 어찌보면 거칠다. 얼키설키 엮인 나무사이로 나사와 볼트가 끼워져 있다. 작품 크기마다 디테일이 달라진다.
―나무는 어떤나무인가?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이는것은 낙엽송이고, 밤나무 잣, 계동백(쪽동백)등 나무로 구할 수만 있으면 다 쓴다. 재료가 비싸보인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산에서 쉽게 구할수 있고 싸고 별볼일 없는 나무들다. 벌목하다 남은 것을 주워오기도 하고 대량으로 산다. 전시장에 걸었을때 어떤 효과를 주느냐에 집중한다.
―못작품은 어떻게 나왔나.숯에 징글징글 납작하게 붙은 못들은 멀리서보면 자개같기도 하다.
▲어느날 작업장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그을린 나무토막에 물방울이 튀는데 반짝반짝, 그 느낌이 좋았다. 자세히 보니 곰팡이도 있고 별볼일 없었지만 반짝이는 느낌을 어떻게 살려낼까 궁리하다 떠오른 작업이다. 태운 나무에 스테인레스 못을 박아서 갈아냈다. 나무작업의 경우 아, 나도 할수 있었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못작업은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작업이다.못 작업의 재미가 크다.
▲ 지난달 집들이가 시작된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500여평의 이재효전시장에는 그의 나무와 못으로 만든 모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대규모 미술관으로 손색이 없어보였다. |
―숯위의 못작품은 테이블같기도 하다.
▲테이블이라고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는 그 위에 유리를 깔아 테이블로 사용하기도 하더라. 상관없다. 가구로 만들었다기 보다 그렇게 쓰여진다면 어쩔수 없는것 아닌가. 훨씬 더 자주보고 가까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흔한 재료로 가장 아름다운 못을, 나무를 만드는게 내 작업이다. 작품을 보고 사물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과 마음이 생기면 그걸로 족한다.
―작가로서 성공했다. 목표는.
▲10m짜리 공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충격을 받은적이 있다. 작가 아니쉬카푸어가 천장높이가 60m나 되는 그 미술관에 빨간천 하나로 채워넣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나였다면 그 큰 공간에 나무공 몇개를 갔다 놓았을 것이다. 이후 크게 키울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환기미술관에서 지름 5m 짜리가 선보였지만 10m이상 (나무)공을 크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98년 오사카트리엔날레에서 1억원의 상금을 거머쥐며 주목받은 이후 주로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어온 작가는 올해도 국내외 잇단 전시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용산 비컨갤러리(6일∼8월8일)에서 이정웅작가와 2인전을 열고, 홍콩에서 개인전을 연데 이어, 10월 영국 런던에서도 전시를 가질 예정이다.
“나에게 조각이란 그냥 생활이에요. 적성에 맞는 직업인데 요즘엔 유독 미술한다면 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예전에 작품이 팔리기 전엔 아이들 학교에 적는 직업난에 조각가라고 쓰면 창피했는데 지금은 조각가라고 당당하게 쓰죠. 문화수준이 높아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 저도 해외에서 많은 전시를 하면서 문화 첨병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요.하하”
꼼꼼히 채워온 ‘조각 시간’은 성공의 황금을 이루는 파편이라고 했던가. 조각 조각 놀라운 밀도로 응축한 작품과 서있는 작가는 작은 체구였지만 산처럼 커보였다.
/ hyun@fnnews.com박현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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