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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희의 도쿄스토리] 美 뮤지컬 코미디 ‘더 뮤직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8.02 16:31

수정 2010.08.02 16:31


미국 뮤지컬 코미디 ‘더 뮤직맨’, 일본 관객 사로잡다

일본과 한국의 뮤지컬계를 비교할 때 눈에 띄는 점 가운데 하나는 일본은 한국과 달리 창작뮤지컬 제작 편수가 얼마 안되는 대신 라이선스 뮤지컬 편수는 많다는 것이다. 뮤지컬이 소개된 역사가 길고 관객층이 넓은 만큼 웬만한 작품은 거의 소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봄 일본에서 1950년대 미국 뮤지컬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더 뮤직맨’이 초연됐다. 4월 23일부터 6월 5일까지 도쿄를 비롯한 4개 도시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뒤 5년 뒤인 1962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었다. 또한 1980년과 2000년에 리바이벌돼 롱런한데 이어 2003년에는 TV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만큼 유명한데도 아직까지 일본에서 공연되지 않았던 게 이상할 정도다.

‘더 뮤직맨’은 뮤지컬 애호가 사이에서는 1958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꺾고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한 8개 부문을 휩쓴 작품으로 유명하다.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레오나드 번스타인 작곡과 스티븐 손드하임 작사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 뮤지컬 팬들은 ‘더 뮤직맨’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순위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는 이 작품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진 미국인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으로도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스토리는 1912년 아이오와의 리버시티라는 소도시에 헤럴드 힐이라는 외판원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헤럴드 힐은 시골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에게 청소년 고적대를 만들 것을 권유한 뒤 악기와 유니폼을 팔아치우고 도망가는 사기꾼. 리버시티에서도 자신을 음악박사라고 소개한 뒤 주민들을 유혹하는데, 깐깐한 도서관 사서 마리안만이 그가 가짜라는 것을 눈치챈다.

마리안은 시장에게 헤럴드 힐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지만 내성적인 동생을 비롯한 아이들이 악기를 받고 환해지는 모습에 입을 다문다. 그리고 헤럴드 힐 역시 돈을 챙긴 뒤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순수한 마리안을 사랑하게 되면서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이때 헤럴드 힐의 과거 행적을 아는 외판원이 등장해 그의 정체를 폭로하면서 궁지에 빠지지만 아이들이 유니폼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주민들의 용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마을 고적대가 드디어 퍼레이드를 펼치게 되고 고적대장이 된 헤럴드 힐은 마리안과 행복한 삶을 꾸리게 된다.

이 작품은 과장된 코미디로 청중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한편 주인공이 사랑과 행복을 얻는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뮤지컬 코미디의 전형이다. 내용이 너무 소박하고 달달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탐탁치 않아 할 수도 있지만 음악만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뮤지컬 넘버 가운데 ‘76 trombones’ ‘Goodnight my someone' ‘Till there was you' 같은 곡은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할 정도다.

‘더 뮤직맨’의 음악을 담당한 사람은 메레디스 윌슨. 작곡 뿐만 아니라 작사, 대본까지도 혼자 해낸 천재다. 너무나 다재다능한 탓에 뮤지컬 뿐만 아니라 클래식, 팝송, 영화음악 등에서 활동하느라 뮤지컬 편수가 3편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일본 버전의 ‘더 뮤직맨’은 T.M.Revolution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수 니시카와 타카노리(40)를 주연으로 내세웠는데, 천방지축 사기꾼 해럴드 힐을 기대 이상으로 맛깔스럽게 해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출연자들이 모두 악기를 연습해 직접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일본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니시카와 타카노리는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로 일본에서도 상당한 팬을 거느리고 있다. 아마 애니메이션 팬들이라면 ‘건담 시드’의 OST 가운데 ‘메테오’의 작곡 겸 가수로 기억할 것이다.

‘건담’ 시리즈에 성우로 출연하는가 하면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에서 출연해 연기상을 받는 등 재주꾼인 니시카와 타카노리가 이번에 새롭게 도전한 것이 바로 뮤지컬 배우다. 불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얼굴을 가진 그가 랩을 하듯 빠르게 쏘아대는 해럴드의 노래를 부를 때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만 공연 내내 안타까왔던 것은 니시카와 타카노리의 외모였다. 너무 젊어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158cm인 그가 키높이 구두를 신었음에도 불구하도 아담한 여주인공보다 더 작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사기꾼 기질을 발휘해서 시골 사람들을 홀리는 장면은 나무랄 여지가 없었지만 마리안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만은 마치 누나와 동생을 보는 것 같아서 다소 아쉬웠다.

지난해 한국의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청객으로 나온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발언했다가 큰 난리가 났던 것은 알고 있지만 연기에 있어서 배역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 캐스팅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일본 관객들은 사소하게 생각한 듯 니시카와 타카노리의 능청스런 연기에 열광하며 몇 번씩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lovelyte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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