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인턴기자 현장취재]막노동 하다 걸리면 지원 뚝!..쪽방의 겨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2.11.12 17:35

수정 2012.11.12 17:35

▲ 서울 용산구 후암로 57길 일대 '동자동 쪽방촌'에는 1000여가구의 주민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쪽방촌 안 대부분의 집은 낡은 시설에다 부엌, 거실, 방 등의 구별이 없어 살림살이가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한 주민이 추운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인턴기자
▲ 서울 용산구 후암로 57길 일대 '동자동 쪽방촌'에는 1000여가구의 주민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쪽방촌 안 대부분의 집은 낡은 시설에다 부엌, 거실, 방 등의 구별이 없어 살림살이가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한 주민이 추운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지수 인턴기자

올겨울 추위는 여느 때보다 더 매서울 것이란 예보가 들린다. 겨우살이가 힘겨운 이들에겐 정말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 일대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는 어느새 다가온 겨울을 근심스럽게 맞이하는 1000여가구가 빼곡히 모여 살고 있다. 본지 인턴기자들이 몇차례에 걸쳐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취재를 하러 갔지만 밥도, 설거지도 함께했다. 동자동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서울 용산구 후암로 57길 일대는 '동자동 쪽방촌'으로 불린다. 인근에 초고층 빌딩이 우뚝 솟아 있고 바로 길 건너편으론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1000여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자동 쪽방촌은 서울 시내에서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많게는 10여가구가 함께 쓰는 재래식, 일명 '푸세식 화장실'이 곳곳에 위치해 있고 낡은 건물 밖으론 전선 등이 얼기설기 그대로 노출돼 있다. 쪽방촌 안 대부분 집이 부엌, 거실, 방 등의 구별이 없어 살림살이나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것은 여기선 어쩌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또 찬바람이 불면서 문풍지, 신문지, 박스 등으로 곳곳을 막아 놓은 집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겨울나기 준비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다녀오세요." 9월에 처음 들렀을 때 인사를 나눴던 정명화씨(69)를 일요일인 지난 11일 두번째 방문 때도 다시 만나 기자가 반갑게 말을 걸었다.

"먹을 것 좀 사러 시장에 갔다 왔어."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봉지속 먹을 것이란 바로 '소주'였다. 그러고 보니 이날 골목에서 만났던 몇 사람의 손에도 정씨와 같은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몇 겹의 이불을 덥고 여기에 옷까지 두껍게 입고 밤을 보냈지만 뻐근한 몸을 소주로라도 달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달 동안 못 본 사이 정씨는 한 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괜찮아. 난 수급자라 모든 게 무료야. 동부시립병원에서 치료 받고 왔어."

이곳 쪽방촌 사람들은 대부분이 정씨처럼 3.3㎡(1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월세는 방의 크기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14만~25만원을 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정부로부터 매달 나오는 돈이 45만원, 이 가운데 방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병원비 등을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막노동 등 일당을 벌려다 들키면 보조금마저 받을 수 없다.

한민수씨(57)도 그런 사람 중 하나.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다보니 며칠 나가서 일용직 노동을 했는데 그것이 발각돼 그나마 받던 보조금도 깎였어. 월세를 내고 나면 세끼 먹고 사는 것도 힘들어. 그래도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괜찮다. 노인들이 더 걱정이다."

자신도 생계가 막막하다더니 오히려 다른 사람 생각이 먼저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 이웃집에 살던 노부부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당시 이들 부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한씨였다.

"이곳은 특히 독거노인이 많다. 사회복지사가 가끔씩 드나들긴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노인들이다. 겨울에는 더더욱 그렇다. 쌀도 주고, 보조금도 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돌봐줄 사람이 많지 않은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전기료가 월세에 포함돼 있지만 추운 겨울을 온전하게 나기란 쉽지 않다.

집주인이나 관리인들이 전기난로나 전기장판 등 전기 소모가 많은 제품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준씨(61)는 "전기장판을 틀면 그나마 견딜 수 있는데 이것조차 없어 못 틀거나 어떤 주인들은 화재 위험 때문에 이마저도 틀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마침 방문에 문풍지를 붙이고 있던 김용일씨(56)도 넋두리를 늘어놨다. "이렇게라도 외풍을 막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겨울을 버틸 수 없다. 지금 제공해주는 난방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인데 그걸로는 턱이 없어."

김씨는 동자동 쪽방촌내 옥탑방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다. 그나마 김씨가 쓰고 있는 옥탑방은 다락도 갖춰져 있고 수도시설도 있어 3.3㎡ 정도의 같은 방보다 2만원가량이 더 비싸다. 이런 옥탑방이 동자동에선 한마디로 '펜트하우스'인 셈이다.

동자동사랑방 엄병천 대표는 "지자체나 기업, 사회복지단체에서 담요나 전기장판 등 물품을 대주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기업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행정기관에선 이곳 주민들의 주거 여건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또 궁극적으론 주민들 스스로 일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희망자활근로라고 해 봐야 한 달에 38만원인데 기초수급자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 누가 일하러 가려고 하겠느냐"며 반문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매서운 바람과 눈보라, 때만 되면 생색만 내려는 사람들과 정책 사이에서 이곳 쪽방촌 사람들은 오늘 아침에도 냉골에서 일어나 소주 한 잔으로 온기를 찾고 있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김문희 박지애 박소연 이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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