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한갑수 기자】 "주민과 재개발조합 간의 주장이 한 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업 지연에 따른 벌금 부과 판결까지 내려진 상태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시급했습니다."
김미경 인천시 부평구 공공갈등조정관(50·사진)은 전국 지자체 최초의 공공갈등조정관으로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갈등조정관은 민·민, 민·관 갈등이 극심한 사안을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김 조정관은 지난 2011년 초 홍미영 인천 부평구청장의 제안으로 부평구 십정동 지역의 고질적 현안인 고압송전탑 이설.지중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급 투입됐다.
김 조정관은 대한성공회 인천난민의 집에서 비정부기구(NGO) 회원으로, 인천지역 대표 여성단체인 여성민우회와 사회갈등연구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했지만 공공갈등 해결을 위한 조정관으로 업무에 임하기는 처음이다.
십정동 지역은 지난 1977년 고압송전탑이 설치된 이후 2000년 지역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고압송전설로 이설.지중화를 추진했다. 그러던 중 2005년 지역주민의 반대로 이설이 중단되고 재건축을 위한 공사 강행과 주민의 지중화 요구가 팽팽히 맞서면서 민·민 갈등이 극심해졌다.
인천시와 부평구는 그동안 송전선로 이설과 지중화사업을 위한 수많은 대안을 제시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7년째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김 조정관은 초기에는 상대편에서 보낸 '스파이'로 오인해 주민과 제대로 된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하고 면박만 당하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느 정도 주민의 신뢰를 쌓은 뒤에는 주민과 조합 양측 모두 갈등 조정이 필요한 이유를 몰랐으며 서로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어려움이 많았다.
김 조정관은 주민의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해묵은 감정을 걷어내고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주민이 잘 모르고 간과한 부분도 충분히 설명했다.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해 사업 추진을 지연시킬 경우 재판 판결에 따라 물어야 하는 회당 100만원의 벌금에 대해서도 이해시켰다.
이러기를 수차례. 드디어 주민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민과 조합은 우선 송전탑을 아파트 지역을 피해 이설하고 최소 5년간 논의하지 않고, 이후 다시 이설하거나 지중화하기로 합의했다. 김 조정관이 갈등조정관으로 일한 지 불과 100일 만에 주민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 조정관은 일당 3만원을 받고 공공갈등조정관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지난 4월 전임 나급(6급 상당)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됐다. 그는 그동안 조정관 경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재개발.재건축 사업 추진 지연에 따른 갈등요인 길라잡이'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kapsoo@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