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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새해, 본원적 목표를 잊지 말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23 17:35

수정 2014.10.30 04:22

[여의나루] 새해, 본원적 목표를 잊지 말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겨울 설산은 참 매력적이다. 하지만 등산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있다고 한다. 독일어로 '링 반데룽(Ring Wanderung)', 즉 윤형방황(輪形彷徨)이라고들 한다.

알프스에서 폭설로 인해 행방불명됐던 등산가가 13일 만에 가까스로 구조됐다. 그는 산을 내려오기 위해 매일 12시간씩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길을 잃었던 장소에서 고작 반경 6㎞ 안에서 빙빙 돌았을 뿐이었다고 한다.

사람은 눈을 가리고 걸으면 누구도 한 방향으로 똑바로 걷지 못한다. 가령 일직선으로 목표를 세운 후 눈을 가리고 걷게 하면 20m를 걸으면 목표에서 4m 벗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는 계속 목표를 향해 앞으로 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큰 원을 그리며 돌기만 하는 것을 바로 윤형방황이라고 한다.

설산이나 사막과 같이 사방 모양이 똑같은 곳을 걷거나, 짙은 안개나 폭풍우를 만나 시야가 가려졌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는 것이다. 필자가 새해 초 새삼스럽게 윤형방황 얘기를 꺼낸 것은 필자의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니 앞으로 간다고 내 나름대로 안간힘을 썼지만 원을 그리며 방황했던 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매년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큰 목표를 세워 새 출발을 다짐하지만 쉽게 무너지기도 하고 종래의 일상을 반복하면서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윤형방황을 하고 만다.

마음을 새롭게 했지만 20m만 지나면(?) 과거의 습관이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는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지, 몇 해 전과 비교해 계속 같은 방황만 하고 말지는 않았는지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싶다.

윤형방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지도·나침반·북극성 등과 같은 길잡이를 이용해 방향을 찾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강박감이나 피로로 인한 사고력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해 30보쯤 걷고 난 후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 걷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눈앞의 일에만 정신을 빼앗겨 장래의 계획을 생각하지 못하거나, 장래의 계획만 생각해 눈앞의 일은 등한시하는 그런 단면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윤형방황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건성건성 세운 계획으로 남의 눈치나 보거나 남 말에 쉽게 흔들리거나 이웃의 모양이나 따라가면 열에 아홉은 방황을 하고 말 것이다. 먼 앞날까지 깊이 생각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차곡차곡 그 계획된 일을 해 나가되, 30보쯤마다 다시 고쳐잡고 꾸준히 그리고 꼿꼿이 앞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남극 탐험이라면 로알 아문센이나 로버트 스콧보다 어니스트 새클턴이 떠오른다.


그의 이야기는 누가 최초로 남극에 갔나, 누가 학술 연구자료 채취에 공헌했나 하는 성공담이 아니라 감동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다가 부빙군에 갇혀 조난당한 후 630여일 동안 대원들의 단결과 유대감을 이끌어내 상상하기도 어려운 남극의 자연을 이겨내고 (그들보다 1년여 전에 똑같은 조난을 당한 캐나다 탐험대가 죽음과 극한상황 속 대원 간의 속임수, 거짓말, 도둑질 때문에 전원이 몰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탐험대원 27명 전원을 생환시켜 우리에게 '위대한 실패의 리더'라는 감동을 준다.


새해 혹여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독자가 있으면 새클턴이 한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라'라는 말을 새겨봤으면 한다. 올해는 링 반데룽을 하지 말자.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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