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티, 잉낭, 자작골, 은선동, 샛터, 느짓목, 스무티, 양지편, 갬발, 안골, 원무루…. 내 고향이자 충남 보령에 있는 자연부락 이름이다. 언뜻 봐서는 무슨 뜻인지 모를 게다. 일부는 한자에서 따왔을 성싶다. 다리티는 월치(月峙), 즉 달이 뜨는 산이라는 뜻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 마을은 산 밑에 있다. 자작골과 안골은 '곡(谷)'에서 따왔다. 골짜기라는 뜻이다. 두 마을 역시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지명 하나 하나에도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말만큼 아름다운 언어도 없다. 한자어가 많다지만 순수 우리말도 적지 않다. 그런데 토종 우리말이 홀대받고 있다. 외래어를 많이 써야 유식한 줄 한다. 그중에서도 영어가 특히 심하다. 외국 유학파는 물론 국내에서 공부한 지식인도 영어를 너무 많이 섞어 쓴다. 절반을 영어로 쓰는 사람도 있다. 이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행위다. 자기는 알지 몰라도 상대방이 이해 못할 수도 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할까. 언어의 첫 번째 기능은 소통에 있다. 그런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인천 송도의 경우 도로명 절반이 외래어라고 한다. 컨벤시아대로, 하모니로, 벤처로 등. 국제도시라고 하지만 외래어투성이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같은 청라지역은 더 심하다. 사파이어로, 크리스탈로, 청라루비로, 청라라임로, 청라에머랄드로. 무슨 보석도시에 온 느낌이다. 지역 주민들도 불만을 토로한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뿐더러 한국의 집주소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얘기했다. 잘못된 행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편의적인 발상이라면 고치는 것이 맞다.
어디 그뿐인가. 국립국어원이 최근 민주당 김윤덕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국어원은 외래어 지명 936개 가운데 68개를 수정해 지적했다고 밝혔다. 국어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테헤란로, 송파구의 올림픽로처럼 오랫동안 써왔거나 이미 굳어져 다른 말로 대체하기 어려운 외래어는 그냥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디지털로, 유엔로 등 특정 길 이름으로 불리기에 애매모호한 이름은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테크노로, 충남 보령의 머드로도 같은 범주다.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도 좋을 듯싶다. 국어원은 그 예로 드림로는 희망로, 아카데미로는 대학로, 테라피로는 숲치유로로 대체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구태여 외래어로 부를 필요가 있을까.
poongyeon@fnnews.com 오풍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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