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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 (8) 삐삐치던 X세대 ‘호모 모빌리쿠스’ 진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1.11 17:13

수정 2015.01.11 21:43

'IT코리아' 온국민이 얼리어답터

[한국인의 삶] (8) 삐삐치던 X세대 ‘호모 모빌리쿠스’ 진화

#1. 호모 모빌리쿠스의 하루

X세대로 불렸던 94학번 박재용 과장은 현재 사내에서 얼리어답터로 유명하다. 출근 전 피트니스 밴드 착용은 필수다. 요즘 들어 뱃살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아 신경 쓰여 검색신공을 발휘해 골랐다. 오늘은 바로 창원에 있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회사가 구축한 데스크톱 가상화(VDI) 덕분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보고서를 내려받고, 현장점검 결과는 곧바로 사내 클라우드에 올려 보고한 후 회사로 복귀했다.
알람음과 함께 진동이 울리며 휴대폰에서는 안내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오늘 총걸음 수는 3532보입니다. 목표 대비 35%만 움직이셨어요.' 어느새 사무실 시계는 오후 8시다. 퇴근길 헬스장에 들러 잠깐 운동을 하고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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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예인 제친 카카오 프렌즈의 인기

박 과장은 오랜만에 공학용 계산기를 서랍에서 발견하고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계산기 뒤판 안쪽을 꽉 채운 핑클의 성유리와 이효리 스티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0년 출시된 핑클 스티커가 들어있는 핑클빵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편의점에는 핑클 대신 익살스러운 표정의 카카오 프렌즈의 캐릭터가 빵 봉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허기를 달래는 데 적격인 데다 스티커 뽑는 재미는 여전하다.

지난 20년간 급속도로 발전한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의 열매는 IT코리아의 탄생이다. 1994년 9.8kbps의 속도로 시작된 인터넷 서비스는 20년이 지난 지금 10만배 빠른 기가인터넷으로 진화했다. 초고속 통신망으로 대표되는 ICT 인프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현재 전세계 ICT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의 첨단 스마트폰을 만드는 회사는 삼성전자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새 서비스를 빨리 이용해보고 싶어하는 얼리어답터와 적극적인 성향의 한국 ICT 소비자들은 국내 ICT산업 발달의 밑거름이 됐다.

■후발주자 삼성 1등 만든 건 통신망

2015년 현재 우리나라 스마트폰 가입자는 약 4000만명이다. 스마트폰으로 영화표를 사고, 피자를 주문해 먹는 일은 이제 한국인에게 일상이다.

불과 18년 전인 1997년 무선호출기(삐삐)가 1500만명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공중전화 박스에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숫자 다이얼을 이용해 연인에게 '1004(천사)' '8282(빨리빨리)' 같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설렘이 담긴 연인의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던 시절이다.

삐삐는 시티폰과 개인휴대단말기(PDA)에 자리를 내줬으며, 이후 휴대폰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1995년 100만명, 1998년 1000만명, 1999년 2000만명, 2013년 말 5468만840명으로 인구 수를 추월하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 시넷은 모토로라 연구소의 마틴 쿠퍼가 세상에 휴대폰을 처음 선보인 이래 지난 41년 동안 이 시장의 지각을 변동시킨 12종 제품을 선정했다. 모토로라 스타택, 노키아9000, 블랙베리6210, LG KE850 프라다,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S3 등 총 12종이다.

1996년 출시된 스타택은 휴대폰 대중화의 시작이었다. 99개의 연락처를 저장할 수 있고, 배터리 수명이 무려(?) 4시간이나 됐다. 스타택은 이전의 어떤 휴대폰보다도 가벼웠다. 이는 지금의 저사양 스마트폰과도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초라하지만 당시 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스펙이었다.

그랬던 모토로라는 휴대폰을 최초로 선보였던 영광을 뒤로 한 채 구글에 팔렸다. 반면 삼성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지배자로 자리를 굳혔다. 모토로라와 삼성의 엇갈린 운명 뒤에는 전 세계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화한 한국의 통신인프라가 있었다.

현재 국내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KT가 1994년 국내 최초로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던 9.8kbps보다 10만배가량 빨라져 1기가(Gbps)속도를 제공한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자양분 삼아 스마트폰이 한국을 휩쓸면서 기업들의 사업모델도 바뀌었다. 네이버, 카카오톡 등이 탄생했으며, 사물인터넷(IoT) 같은 차세대 사업을 꿈꾸는 기업들은 한국을 가장 효과적인 시장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인의 삶] (8) 삐삐치던 X세대 ‘호모 모빌리쿠스’ 진화


■ 21세기 디지털 노마드족의 탄생

스마트폰의 등장은 디지털 노마드족(유목민)을 탄생시켰다.

굳이 사무실 PC 앞에 앉아 있어야 업무를 할 수 있던 시대를 끝내고, 스마트폰·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회사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면서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데스크톱PC, 노트북PC는 1990년대 사무실을 대표하는 정보화 기기다. 2000년대에는 슬림PC, 태블릿PC, 일체형PC, 컬러 레이저프린터 등 사무기기가 다양화됐다. 2009년 이후 스캐너, 복합기가 대중화됐으며 2011년에는 에너지 절전형인 저전력 PC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중앙처리장치(CPU) 처리속도는 200배 빨라졌다. 저장공간인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용량 역시 1995년에는 400쪽 분량의 책(1.2MB) 기준으로 700여권을 수록하거나 노래 1곡(4MB) 기준으로 210여곡 수록할 정도의 850MB 용량에서 최근에는 400쪽 분량의 책 25만권 이상을 수록하거나 노래 8만곡 또는 120분짜리 3차원(3D) 영화 75편 이상 수록이 가능한 300GB 이상 용량으로 발전했다.

디지털 노마드족과 함께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저장해야 했던 사진이나 음악, 개인들의 자료는 모두 믿을만한 회사의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한다. 굳이 개인이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어디서나 원할 때 내려받아 보면 된다. 집집마다 필수품이던 데스크톱PC는 이제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의 데스크톱 및 서버 가상화 덕분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BYOD(개인이 산 단말기를 업무용으로 쓰는 것)의 확산이 두드러지고 있다. 업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 사무실은 스마트워크 환경으로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하드웨어의 불랙홀이 됐다. 한때 일본 여행 시 구입 상품 0순위가 니콘의 디지털 카메라나 소니의 워크맨이었으며, 공학도들은 샤프의 공학용계산기를 들고 중간고사를 치렀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아이튠스에 접속해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담아 듣고, 공학용 계산기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디지털일안반사식(DSLR)을 능가하는 화소와 센서를 자랑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는 보급형 콤팩트 카메라의 자리를 꿰찼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2011년 이후 대부분의 고급 모델에서 800만화소가 표준화된 이후로 삼성, 노키아, 소니 등 단말기 제조사들은 콤팩트 카메라를 넘어 일부 DSLR과 유사한 수준인 1300만화소 이상의 모델을 2012년 중반부터 선보이고 있다.


■IT코리아 만든 얼리어답터 유전자

고종황제는 1887년 일본·중국보다 2년이나 빨리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를 들여와 한반도를 밝혔다.

전기, 전화, 전차 광산, 기차 등의 서구 선진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문명의 조선을 만들고자 한 고종황제는 '얼리어답터'였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모바일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자질로 한 번에 몰아치는 '쏠림'의 문화와 신기술을 재빨리 수용하는 얼리어답터 문화를 꼽는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2009년 풀브라우징 단말기가 등장하고 스마트폰 정액제 요금으로 불과 2년 만에 스마트폰 이용자가 1500만명을 넘어서는 얼리어답터의 속성을 과시한 바 있다. 그 결과 치열한 스마트 전쟁에서 노키아는 침몰했고, 삼성·LG 등 국내 기업은 버텨냈다.

이후 발전을 거듭해 올해 3월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1위(67.5%)를 기록했고, 롱텀에볼루션(LTE) 가입자는 서비스 상용 2년4개월 만에 3000만명을 초과하면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글로벌 IT제품의 테스트베드로 불리는 '얼리어답터 국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중요한 일전을 위해 백일의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제 서울을 거쳐 우리의 깃발을 퍼뜨려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지난해 세계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 시장 2위, 세계 스마트폰 시장 5위, 작년 매출 42조원의 거대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한 화웨이는 서울을 거쳐 세계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세계 최고 수준의 IT.스마트폰 인프라 덕분에 훌륭한 테스트베드가 조성됐고, 이로써 창조경제의 핵심동력인 '스타트업'을 육성할 수 있는 토양을 갖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세계 최고의 ICT 인프라를 갖추고 세계 시장의 테스트베드의 위상을 확보한 데서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더 강화하고 신기술, 신산업을 적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정부뿐 아니라 산학계 전문가들은 의료와 교육 외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스마트 융합을 통해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일궈 국가적 현안 해결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bbrex@fnnews.com 김혜민 기자

■호모 모빌리쿠스": 휴대 전화기의 대중화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현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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