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인터넷 상에서는 많이 쓰는 말인지 몰라도 대놓고 웃으며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면서 "농담이라는데 정색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단지 먹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왜 벌레가 되어야 하나"라고 씁쓸해했다.
최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맘충' '진지충' '설명충' '노인충' 등 다양한 계층이나 집단에 벌레 충을 붙인 합성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쓸데 없이 진지한 사람을 칭하는 '진지충' 탕수육의 소스를 찍어먹는 이들을 가르키는 '찍먹충' '진지충'과 비슷한 의미의 '설명충' 등 표현도 무궁무진하다. 이런 표현은 농담 수준이지만 '맘충' '노인충' 등 특정 계층을 싸잡아 비하하고 동성애자와 특정 종교인들을 'X꼬충' 'X독충'이라 칭하기도 한다.
'상아탑'이라는 대학 내에서도 대입 전형에 따라 진학한 이들을 '지균충'(지역균형전형) '기균충'(기회균등선발)으로 깎아내리고 편을 가른다. 특히 이런 '~충'에는 '극혐'(극도로 혐오한다)이 대부분 따라붙어 심각한 혐오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번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제로 "'맘충' '진지충' 우리가 벌레인가요"로 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엄마가 혐오의 대상?"
경기 일산의 주부 김모씨(33)는 얼마 전 '정부의 전업주부 자녀 어린이집 종일반 이용 제한'에 대한 기사를 읽다 큰 충격을 받았다. 전업주부로 4, 6세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기사 댓글이 온통 전업주부를 '놀고 먹는 사람'으로 비하하고 '맘충(MOM+충) 극혐'이라는 말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며 "어린 아이를 둔 전업주부는 모두 죄인인 듯한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의 최모씨는 7개월된 아이와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초등학생 남학생들 몇몇이 자신을 가리켜 "맘충이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최씨는 어이가 없어 쫓아가 "맘충이 무슨 말인지나 알고 하는거냐'고 묻자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다. 최씨는 "무분별한 용어 사용으로 '엄마'라는 지위가 혐오와 공격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사로 정년퇴임한 정모씨(70)는 얼마전까지 즐기던 등산을 중단했다. 소일거리이자 건강관리를 위해 매주 2~3회 산을 찾았던 정씨는 지하철에서 20대 젊은이들로부터 수모를 당한 것이다. 마침 지하철을 탄 시간이 출근시간대로, 사람이 몰리자 주변의 젊은이들이 들으란 식으로 '늙어서 할짓 없으니 등산이나 다닌다' '노인들 무임승차를 없애야 한다' '팔자좋은 노인충'이라고 떠들었다.
정씨는 "딱 듣는 순간 (노인충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저들과 같은 치열한 시기를 거쳐온 사람으로, 일견 이해도 되지만 (늙는다는 것이) 서글펐다"고 털어놨다.
■민폐에 대한 직설…팍팍한 현실도 한 몫
반면 왜 그런 말이 유행처럼 번졌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식당과 카페 등은 마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내버려두거나 식당 테이블에서 버젓이 기저귀를 가는 일부 민폐 엄마들이 '맘충'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
영업일을 하는 양모씨(41)는 "일 때문에 카페를 갈 때마다 엄마와 아이가 없는지를 살핀다. 안 그런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젊은 엄마 둘 셋이 모여 아이들은 떠들든 말든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전했다.
대학생 김모양은 "밤늦게 지하철을 타면 우리도 피곤하다. 사실 앉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야 다 같지 않겠느냐. 일부 할머니들은 일행이 같이 앉아야 한다며 비키라고 하고, 좀 늦게 일어나면 욕까지 한다"며 "노인충이라는 말은 이런 일부 '진상'을 가리키는 말로 안다"고 말했다.
조모씨(32)는 "요즘 '헬조선'(지옥+조선의 합성어)이 유행일 정도로 사는게 팍팍하다. 취업은 안되고, 결혼도 포기할 정도로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이런 자괴감이 쌓이다보니 공격성만 늘어난다. 청년들이 여유가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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