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원짜리 없으면 왕따
상반기에만 절도 8000건 작년 피의자 80%가 10대
서울 광진구에 사는 고등학생 박모군(17)은 최근 친구들과 관계가 서먹해졌다. 친구들이 주말마다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는데 가정 형편상 값비싼 자전거를 구입할 수 없어 혼자 남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도 자전거 탄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곧장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그때마다 자신만 벙어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상반기에만 절도 8000건 작년 피의자 80%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신종 '등골브레이커'로 고가의 자전거가 떠오르면서 자전거 절도행위가 급증하고 있다.
한때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고가의 패딩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패딩을 사지 못하면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자녀에게 고가 패딩을 사주다가 부모들 등골이 휜다는 의미로 특정 브랜드의 패딩은 '등골브레이커'로 불린 바 있다.
■"남의 자전거에 손이 가요"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자전거 절도 건수는 올 1월 972건에서 3월 1030건으로 1000건을 돌파했으며 올 6월에는 2467건으로 집계됐다. 올 상반기 자전거 절도만 8000건을 웃돌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청소년 절도라는 것이다.
경기 광명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 검거된 자전거 절도 피의자의 약 80%가 10대 청소년"이라며 "금품을 위한 절도보다 특별한 죄의식 없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절도를 저지르는 학생이 많다"고 밝혔다.
실제 45만원 상당의 자전거를 도난당한 경험이 있는 고등학생 박모군(17)은 "학교 안에 자물쇠를 채워놨는데 누가 통째로 가져갔다"며 "나도 훔칠 수는 없으니까 다시 용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 가자"는 말에 철렁
청소년들이 자전거 절도까지 나서는 것은 또래 집단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고등학교 1학년인 김모군(16)은 "지금 시험기간인데 친한 친구들끼리 시험 끝나고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들었다"며 "자전거가 없는 나에게는 말도 안했다.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고등학생 정모군(17)은 "2개월 동안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80만원 짜리 자전거를 구입했다"면서 "공공자전거는 창피해서 안타고 다녔는데 이젠 친구들이 인정해주고 또 같이 놀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이 타는 자전거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도 절도가 늘어나는 이유다.
서울의 한 자전거 판매업자는 "요즘 학생들이 선호하는 산악 자전거(MTB)나 픽시, 로드용 자전거는 브랜드에 따라 입문용이 70만원 이상 호가하는 제품도 많다"며 "브랜드 있는 패딩 가격으로 입문용 자전거 하나 살 수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은수저.금수저 논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고가 자전거 열풍 역시 학생들끼리 계층적인 차별과 서로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며 "학생들은 사회와 부모로부터 배우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가정) 스스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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