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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을 여는 사람들] 폐업 위기서 재기..손님들이 만든 기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1.06 17:03

수정 2016.01.06 17:03

동주공제 상인 3題
고대앞 영철버거, 경영난으로 문닫은 가게..장학금 받은 학생들이 살려
춘천 꽃돼지분식, 공짜로 식사하던 청년들 폐업위기에 후원자 자처
청계천 헌책방 거리, 대형서점에 밀려 사양길..연대 학생들이 부활 주도
'동주공제.'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배를 타고 내를 건넌다'는 의미의 한자어다. 힘겨운 세상도 함께하면 웃을 만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서 외롭지 않다. '장사꾼'이지만 손님들에게 사랑을 줬더니 사랑을 받는 이들이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폐업을 했다가 주변 도움으로 살아난 고려대 앞 영철버거, 도로 공사로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가 다시 문을 연 춘천 꽃돼지분식, 한때 전성기를 누리다 지금은 쇠퇴기에 접어든 청계천 헌책방 살리기 프로젝트가 모두 '동주공제' 사례다.

■십시일반 모아 재기 '영철버거'

'기부천사'로 고대 앞 명물이 됐던 서울 안암동 영철버거의 이영철 사장.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기부천사'로 고대 앞 명물이 됐던 서울 안암동 영철버거의 이영철 사장.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기부 천사'로 세상에 잘 알려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앞 '영철버거'의 이영철 사장(49). 지난해 7월 경영난으로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다름 아닌 이 사장이 10년가량 꼬박꼬박 장학금을 준 고대생들이었다. '고대의 명물'이 됐던 영철버거의 폐업소식을 들은 고대생 4명은 서슴없이 '비긴 어게인(Begin again) 영철버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영철버거의 폐업은 단순히 한 자영업자의 폐업이 아니다"며 자발적으로 영철버거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4명 중 한 명인 고대 통계학과 전준영씨는 "친구(승주)가 페이스북에서 영철버거가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에 소문을 냈고, 사장님을 도와줄 방법을 찾다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십시일반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솔직히 처음엔 펀딩이 전혀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휴대폰이 난리가 났다"며 신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고대 교수, 졸업생, 주변 상인, 일반 시민 등까지 두루 동참하면서 하루 만에 1600만원의 큰돈이 모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상한선을 2000만원으로 올렸더니 모금액은 바로 2000만원을 넘어섰다. 영철버거를 부활시켜야 한다며 사방에서 온정을 보내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9년 당시 고대 앞에서 영철버거를 처음 연 이영철 사장은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의 거금을 고대에 장학금으로 기부해왔다. 비공식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금액이나 횟수는 이보다 많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1살 때 사회에 나왔습니다. 따뜻한 사랑이나 마음을 받아보지 못했던 나에게 학생들이 많은 사랑을 주고 가치를 인정해줬어요. 그게 고마웠고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이 사장이 옛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햄버거 하나를 더 팔기 위해 장사꾼 행세를 했다면 오히려 학생들이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그렇게 그가 준 '착한 돈'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어느새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있다.

■손님들이 만든 희망 '꽃돼지분식'

32년 동안 배고픈 젊은이들의 안식처가 됐던 강원도 춘천 '꽃돼지분식'의 이기홍 할머니.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32년 동안 배고픈 젊은이들의 안식처가 됐던 강원도 춘천 '꽃돼지분식'의 이기홍 할머니.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춘천 근화동에는 올해로 34년째 문을 열고 있는 '꽃돼지분식'이 있다. 분식집 주인 이기홍 할머니는 팔순이 넘었다.

떡볶이, 순대, 어묵 등을 배고픈 학생들에게 싼 값에 푸짐하게 주다보니 학생들의 놀이터이자 배를 채우는 안식처가 된 지 오래다. 가끔은 '공짜 분식'도 제공한다. 그러다 도로 확장공사로 분식집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2014년의 일이다.

꽃돼지분식이 폐업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섰다. 대부분이 학창시절 할머니의 떡볶이로 배를 채웠던 이들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손님들이 할머니를 돕겠다며 모인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꽃돼지분식의 소식이 퍼져나갔다. 이런 도움으로 결국 꽃돼지분식은 근처에 다시 문을 열게 됐다.

"도로공사를 해야 돼서 건물을 부숴야 했어. 건물 주인도 나한테 미안해하며 새로 자리를 구해줬는데, 내가 모아놓은 돈도 없고 그래서 가게 월세를 낼 수가 없었지. 근데 내 소식을 듣고 갑자기 청년들, 이웃들, 국민들이 도와줘서…. 내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

이기홍 할머니가 당시를 회상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막내딸도 같이 울었다. 막내딸은 "(퍼주기만 하는 것을 보고)사실 속상한 적 많았다. 재료비는 오르고, 월세는 내야 되고…. 근데 어쩌겠냐. 우리 엄마가 좋다는데"라며 엄마를 보고 이번엔 웃었다.

30년 넘게 장사를 했지만 이기홍 할머니에겐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남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다.

■헌책방 살리기 '설레어함'

'설레어함'은 연세대학교 인액터스 소속 '책 it out'팀이 헌책방거리를 살리기 위해 발족한 프로젝트다.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설레어함'은 연세대학교 인액터스 소속 '책 it out'팀이 헌책방거리를 살리기 위해 발족한 프로젝트다. 사진=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청계천이 바로 옆으로 흐르는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내 헌책방 거리. 대형·온라인 서점 등에 밀려 헌책방 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든 지도 꽤 오래다. 80년대만 해도 헌책방만 100여 곳에 달하며 명성을 누렸던 이곳도 지금은 20여곳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활기를 잃었던 거리에 어느 순간 생기발랄한 대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책 it out'팀이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 '설레어함'을 본격 가동한 것이다.

헌책을 사고 싶은 고객이 테마를 정하면 상자에 헌책 3권을 무작정 선정해 발송한다. 고객은 어떤 책이 자신에게 배달될지 모른다. 랜덤 발송이다. 프로젝트명을 '설레어함'으로 정한 이유다. 고객은 배송비를 포함해 1만7500원만 내면 제목도 모르는 헌책 3권을 받고 설레임까지 느낄 수 있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김우현 팀장은 "사회 곳곳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고 싶어 일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헌책방거리처럼 잊혀지거나 소외돼 가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일은 새로운 사회모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총 6명으로 구성된 팀원은 매일 돌아가면서 고객이 (테마만)주문한 대로 제휴한 책방 사장과 함께 책을 골라 손수 포장부터 배송까지 책임진다. 고객은 특정서적을 주문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소설을 원한다면 이를 골라 발송하는 식으로 최대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 헌책과 더불어 '설레임'도 함께 배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평화시장서점연합회 현만수 회장은 "학생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bada@fnnews.com 김승호 기자 김가희 김현 신현보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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