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가난한 대통령과 성공한 대통령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2 16:54

수정 2016.03.24 01:28

[차장칼럼] 가난한 대통령과 성공한 대통령

열정의 대륙, 남미에 두 명의 스타 정치인이 있다. 호세 무히카(우루과이 전 대통령)와 룰라(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다.

"당선자라는 타이틀은 유권자들의 지지로 뽑힌 대통령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나는 임무를 위탁받았을 뿐이다(2010년 3월 무히카의 대통령 취임사)".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두번째로 작은 나라(인구 350만명)다. 무히카(81)는 지난해 퇴임하고 수도 몬테비디오 근교의 작은 농장에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었다. 그가 2013년 말 공개한 재산은 30만달러(3억4800만원). 1987년형 폭스바겐 자동차 두 대, 트랙터 석 대와 농기구들이 전부였다.

무히카는 어린 시절 가난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꽃 장사를 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무히카는 청년기까지 이웃마을 축제에 꽃을 팔러 다녔다. 그 시기 쿠바혁명을 목격했다. 이후 농지개혁 등을 요구하는 민중해방운동-투파마로스의 게릴라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무장혁명은 실패했고, 군부 독재하에 14년간 투옥됐다. 그의 나이 쉰살, 무기를 버리고 민주적 투쟁으로 돌아섰다. 상·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2004년 총선에 최다 득표로 재선했다. 친밀한 소통 능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었고, 2009년 대선에서 중도좌파연합 후보로 승리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는 검소했다. 무히카는 아이를 돌보며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집짓기 사업 '플란 훈토스' 등에 월급(약 1만달러)의 80% 이상을 기부했다. 퇴임 직후 그의 지지율은 70%에 육박했다. 그에게 권력은 '특권'이 아니었다.

룰라(71)는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고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퇴임 직전 지지율은 86%. "모든 국민이 하루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일생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2003년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그는 브라질 경제를 일으켜세웠다. 좌파정치와 다른 시장경제 원칙으로 빈곤율을 낮췄다.

룰라도 빈민층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어린 시절 구두닦이, 땅콩 행상을 했다. 20대에 자동차공장 선반공으로 일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86년 군부독재 종식 후 첫 총선에서 룰라는 전국 최다 득표로 노동자당 하원의원에 뽑혔다. 이어 네번의 도전 끝에 남미 최대국가의 대통령이 됐다. 룰라는 그렇게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노욕(老慾)일까. 룰라는 '페트로브라스(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회사) 스캔들'에 연루돼 구속 위기에 처했다. 인사 개입과 건설사로부터 고급아파트를 뇌물로 받은 혐의다. 비리에 함께 연루돼 탄핵위기에 몰린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에게 '면책특권'이 있는 장관직을 주는 꼼수를 동원했다. 최악의 경제침체 속에 국민은 분노했다. 룰라 지지율은 20%대로 추락했다. '룰라 신화'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인가.

동시대 남미 두 정치인의 운명이 얄궂게도 교차한다.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한 지도자들을 우리도 숱하게 봐왔다. 2016년 3월, 우리 정치인들의 안중에 국민은 없다.
'특권'을 놓고 자기들끼리 난리법석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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