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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균기자가 만난 사람>'아웃사이더'에서 한국 골프 '기대주'로 부상한 왕정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18 11:33

수정 2016.05.18 11:33


'아웃사이더'에서 한국 골프 '기대주'로 부상한 왕정훈


'주변인'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골프계에 본의 아니게 이런 주변인의 삶을 살아온 선수가 있다. 왕정훈(21)이다. 왕정훈은 지난 8일 막을 내린 유럽프로골프(EPGA)투어 모리셔스오픈서 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대회인 하산 2세 트로피에 이어 2주 연속 유럽투어 우승이었다.
그러면서 '이방인'이었던 그는 일약 한국 남자골프의 '기대주'로 신분이 격상됐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골프 여정은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부담과 과열경쟁에 의해 그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게 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필리핀으로 골프유학을 떠난 것. 그로부터 3년이 지나 그는 국내로 돌아와 아버지 왕영조(59)씨의 고향인 전남 보성군에 소재한 득량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국내 각종 주니어대회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당시 라이벌이 현재 미국프로골프(PGA)투어서 활동하고 있는 김시우(21 ·CJ)다.
그러나 대회서 좋은 성적을 낼수록 그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극에 달했다. 결국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필리핀의 아마추어 메이저대회를 석권했다. 그러자 거기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적 시기가 끊이질 않았다. "양국 아마추어를 평정했으니 더 이상 아마추어에 머물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들여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무대는 국내가 아니었다. 나이 제한이 없는 중국이었다. 중국 투어에 퀄리파잉스쿨 2위로 합격한 그는 루키 시즌에 상금왕을 차지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기회의 땅'이나 다름없는 아시안투어 진출 기회를 잡는다. 아시안투어 루키였던 2013년에는 상금 순위 76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 이듬해는 21위, 그리고 만 20세였던 작년에는 상금 순위 9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아시안투어가 유럽투어와 공동 주관으로 개최된 대회가 많아 빅리그인 유럽투어 대회 진출 기회도 잡았다. 2주 연속 우승은 그렇게 해서 잡은 기회를 살린 것이라 의미가 더욱 컸다.
아버지 왕영조씨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아이의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힘들었던 시기를 말한다. 왕정훈에게 있어 골프란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에 의해 골프에 입문했고 배웠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왕정훈 골프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아들을 지도하기 위해 티칭 자격증까지 획득한 아버지의 독특한 지도 방법은 일반적인 국내 골프 엘리트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필리핀 유학도 그런 맥락이다. 왕영조씨는 "경제적 부담도 부담이지만 과열경쟁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년에 20~30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혹사하다간 선수 생활을 오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로 전향하는 이른바 '국내 제도권 골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왕정훈은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 동고동락했다. 스윙을 비롯, 웨이트와 멘탈 훈련까지 아버지가 도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골프에 입문해서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다른 프로의 지도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원포인트 레슨 조차도 없다. 물론 아버지가 모중경(45)과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레슨을 받아 보라"고 종용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아버지의 이론과 생각에 무한신뢰를 한다는 방증이다.
왕정훈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 살 위인 캐디 형(호주 동포 고동우)과 둘이서 투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다. 프로로 전향한 뒤 1년6개월간 투어를 동행했던 아버지는 올해로 3년째 투어에서 모습을 볼 수 없다. 일찌감치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란다. 그는 어려서부터 혼자 부딪혀 가면서 많은 걸 해결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유럽투어서 활동하는 선수 중에서 부모가 따라다니는 선수가 없다는 것도 이유다. 아버지는 그런 환경은 선수들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슨도 곁에서 하지 않는다. 전화로 모든 게 이뤄진다. 이 때 금기시 하는 것이 있다. 대회 도중 통화 금지다. 5개 정도 대회를 마치고 나서 TV중계로 모니터링한 내용을 토대로 문제점을 지적받는다. 레슨은 아주 짧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세세한 지적은 오히려 혼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적을 받은 부분은 대회 도중 실전을 통해 고쳐 나간다. 아버지는 그 다음 대회서 자신이 지적한 문제점이 수정된 것을 확인하고 흡족해한다.
작년에는 세계랭킹에 의해 국내 3개 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리고 두 차례 공동 3위에 입상하면서 상금 순위 17위에 올라 올 시즌 국내 시드도 확보했다. 대회 규모가 크건 적건 간에 국내 대회에 자주 출전하려했다. 하지만 그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제는 유럽투어에 전념해야하는 상황이다. 왕정훈은 "이제부터 큰 대회가 대부분이다. 열심히 해서 유럽투어 파이널에 진출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그는 또 "여세를 몰아 유럽투어 상금 순위를 최대한 끌어 올려 리우 올림픽 출전과 내년 4대 메이저대회 진출 티켓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왕정훈이 첫 우승을 했을 때 '운'으로 치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주에 두 번째 우승을 하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잇따랐다. 왕정훈은 '준비된 스타', '흙속의 진주'였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경기 데이터로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왕정훈은 작년에 리커버리율과 벙커 세이브율 등 쇼트 게임 부문서 아시안투어 1, 2위를 다투었다. 쇼트 게임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강한 멘탈까지 갖췄다.

하지만 그를 '월드스타' 반열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다른 데 있다. 다름 아닌 장타다. 신장 180cm, 체중 72kg의 그리 건장하지 않은 체격조건에서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가 300야드를 찍는다. 이는 PGA투어와 유럽투어의 평균치에 해당된다. 스윙 스피드는 대략 117마일이지만 빠른 회전력으로 장타를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몸의 유연성은 좋지 않지만 골프에 필요한 유연성은 타고 난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왕정훈은 유럽투어 선수와 거리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제아무리 쇼트 게임이 좋아도 장타가 수반되지 않으면 투어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왕정훈이 미국이나 유럽무대서 경쟁력이 충분한 이유다. 그런 그가 19일(한국시간) 아일랜드에서 로리 매킬로이 주최로 열리는 아일랜드오픈서 3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그 결과가 기다려진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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