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로 7년만에 국내 복귀한 박찬욱 감독
영국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 박찬욱 작품 중에 가장 대중적
칸 수상불발 예상했지만 아쉬워.. 세계 176개국에 판매 최다 기록
예매율도 52.8% 1위 출발 좋아
'칸느박' 박찬욱 감독이 영화 '아가씨'를 들고 돌아왔다. '박쥐' 이후 무려 7년만의 국내 복귀다. 박 감독 특유의 미학적 미장센과 탄탄한 스토리는 여전하지만 그의 작품치고는 상당히 밝다. 그 스스로도 "아기자기하다. 잔재미가 가득한, 제 영화 중에 제일 이채로운 작품"이라고 평할 정도로.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아가씨'에 대해 '명쾌한 영화'라고 답했다. 장르영화로 플롯이 뚜렷하고 명백한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영화라는 점에서 '명쾌'하다는 의미다.
영국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 박찬욱 작품 중에 가장 대중적
칸 수상불발 예상했지만 아쉬워.. 세계 176개국에 판매 최다 기록
예매율도 52.8% 1위 출발 좋아
'아가씨'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이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 원작인 '박쥐'에 이어 두 번째로 외국 소설을 영화화했다.
소설의 배경이 됐던 빅토리아 시대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옮겨졌다.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후견인 역할을 하는 권위적인 이모부(조진웅), 재산을 노리고 대저택에 들어온 하녀(김태리)와 사기꾼 백작(하정우) 등 4명이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다. 하녀의 시각과 아가씨의 시선으로 본 플롯 위에서 서로 다른 음모과 반전이 뒤섞이며 몰입감을 높인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과 비교하면 어둡고 침침한 폭력 수위는 낮아졌지만, 제작 초기부터 입소문을 탄 동성애 코드와 '노출 수위 협의 불가' 딱지를 달고 배우 캐스팅에 나선 만큼 선정성은 높아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7년만의 복귀작에서 왜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택했을까. 그것도 반전이 중요한 영화에서 말이다. 그는 "원작만 놓고 봤을 땐 그런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디테일하게 묘사됐을 때 감각적이고 쾌락적인 뭔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전이 뭔지 알고 봐도 재미있을 수 있다. 인물들의 심리에 더 집중하고 음미할 수 있다"고 답했다. 글 속의 장면이 영화 속에서 살아난다면 더 큰 재미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설을 각색하고 문학적 대사를 영화에 쓰는 의미에 대해선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꼽았다. 서울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유명 영화 감독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자양분이자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내 세계가 좁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사람,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꾸준히 (문학작품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이기 때문일까. 지난달 11일 개막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음에도 아쉽게 수상은 놓쳤다. 박 감독은 '올드보이'(2004년)로 심사위원대상, '박쥐'(2009년)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칸느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터여서 당연히 수상에도 관심이 쏠렸었다.
그러나 박 감독은 수상이 어렵겠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고 한다. 그는 "칸 상영 당시 자막을 따라가려니 나도 못 읽겠더라. 내용을 다 아는데도 자막을 읽느라 화면을 볼 틈이 없었다.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상을 안 줄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씨'는 그의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다. 주요 등장인물도 4명으로 많은데다, 전작들의 과묵함은 간데 없고 한국어와 일본어로 바쁘게 오가는 대사는 말맛을 확실히 살렸다.
그럼에도 '수익분기점'이라는 이름으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감독 입장에서는 분명 아쉬울 터다. 수익분기점으로 400만명을 꼽은 박 감독은 "국내 마케팅에서는 (칸영화제 수상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고 전했다. 그간 박 감독은 유명세에 비해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요즘처럼 전국 단위 집계가 이뤄지지 않던 시절의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서울관객 244만7133명, 전국관객 584만명 추정)를 제외하면 그의 대표작 '올드보이'(326만명), '친절한 금자씨'(365만명), '박쥐'(223만명) 등은 400만명 고지를 넘지 못했다.
다만 '아가씨'가 전 세계 176개국에 판매되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년)의 최대 판매 기록(167개국)을 갈아치운 것은 희소식이다. 국내 흥행도 일단 '청신호'가 들어왔다. 개봉일인 1일 오전 7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아가씨'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달았음에도 예매율 52.8%로 1위를 기록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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