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IMF 20년, 무엇이 달라졌나(2)산업] 만성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공장 10곳 중 7곳만 돌아간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03 17:24

수정 2017.01.03 17:24

fn 보고서
우물안 벗어나자마자.. 냄비속에 들어앉은 한국
제조업은 뒷걸음, 좀비기업은 연명.. 부실채권 ‘시한폭탄’은 째깍째깍
빗나간 구조조정, 정부는 청산 아닌 회생 결정
코앞까지 닥친 위기, 제조업 가동률 70.3% 최저
빚더미에 앉은 대한민국, 은행 부실채권 30조 돌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갑자기 당한 급성위기였다. 반면 2017년의 경제위기는 오는 걸 알면서도 서서히 병들어가는 만성위기다. 더 나쁜 상황이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IMF 20년, 무엇이 달라졌나(2)산업] 만성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공장 10곳 중 7곳만 돌아간다

[IMF 20년, 무엇이 달라졌나(2)산업] 만성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공장 10곳 중 7곳만 돌아간다


2017년은 온 나라 국민의 생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20년이 되는 해이다. 외환위기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새 성인이 돼 사회에 진출, 새로운 경제인력으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경제는 여전히 20년 전의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제2의 외환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경제계에 계속 나돌고 있다.

정부의 경제 수장들은 적색 경고등을 켜놓은 채 미국 금리와 실물경제 등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상시 위기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20년 전 외환위기 때는 급성위기였다는 점에서 수술 시 금방 회복할 수 있지만, 현재의 만성 경제위기는 수술 자체가 어렵고 치료를 한다 해도 곧바로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불안감이 크다.

20년 전 외환위기 때는 그나마 해외 수출시장이 살아 있었고 가계부채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시장이 침체되고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쌓여 있다. 현 경제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국 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20년 전과 닮은꼴 경제위기

외환위기를 몰고왔던 20년 전과 현재의 나쁜 경제상황은 여러모로 닮은꼴도 많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쓴 대우조선해양 회생과정은 외환위기로 치닫던 1997년 기아자동차 구조조정 진행상황과 흡사하다. 외환위기 때 기아차 부실화는 당시 구제금융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대선 후보들은 호남 표심을 의식해 기아차 사업장을 찾아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기아차는 분식회계로 대규모 손실을 숨긴 가운데 재계 서열 8위를 달성했다.

외환위기 20년 뒤에도 대우조선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부채비율 7000%에 달한 대우조선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퍼주기식 지원을 통해 청산이 아닌 회생을 결정했다. 5조원대 분식회계로 전직 사장이 구속된 대우조선은 제2 외환위기의 시한폭탄 후보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감마저 있다.

대우조선은 '좀비기업' '식물기업' '물귀신'이라는 각종 지탄을 받았지만 결국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지원을 받게 됐다. 대우조선은 2년간의 회생기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고,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우조선에 이미 지난 15년간 시간을 줬고 쏟아부은 공적자금도 23조원에 달한다. 그리고 다시 국민혈세가 들어간 수조원의 자금을 더 넣으라고 한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대우조선에 대한 채권단의 지원은 정부와 조선협회가 의뢰한 해외 컨설팅 결과에도 반대로 진행됐다. 조선협회에서 맥킨지에 의뢰한 컨설팅 결과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독자회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 같은 외부 컨설팅 결과는 묵살됐다.

경쟁 조선사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으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반발도 즉각 나왔다. 대우조선이 다른 경쟁 조선사들에 물귀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우조선의 위기는 연관산업인 철강산업에도 연쇄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철강산업의 위기는 또 다른 연관산업인 자동차 산업에까지도 직간접 영향을 주게 돼 한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수출경쟁력 하락 돌파구 안 보여

제조업 분야에서 위기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해 주요 기업이 줄줄이 도산한 1997년의 상황도 현재 한국 경제와 판박이다.

20년 전 한국 경제는 수출경쟁력 하락과 제조업 부진에 시달리면서도 1994, 1995년 반도체 호황이 빚은 착시효과 때문에 코앞에 닥친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결국 1996년부터 중견기업이 하나둘 쓰러졌고 1997년 초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 진로, 기아자동차 등 주요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다.

20년 뒤 경제상황도 비슷하다.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갤럭시7' 배터리 폭발로 인해 스마트폰 기술 혁신에 치명타를 입었다. 다만 반도체 호황이라는 버팀목 속에서 간신히 해외 수출의 구멍을 막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 철강, 해운산업 업체들이 선제적 구조조정의 한파를 맞이했다.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청산되고, 국내 4대 조선사를 거느렸던 STX그룹이 해체되는 등 도산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청년실업률과 제조업 가동률은 20년 전 수준으로 나빠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실업률은 8.2%였다. 11월 기준 청년실업률이 이보다 높은 경우는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1999년(8.8%)뿐이었다.

제조업 가동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0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0.3%에 머물렀다. 10월 기준으로 보면 외환위기가 몰아쳤던 1998년(69.8%) 이후 18년 만의 최저치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호황으로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육박했다.

[IMF 20년, 무엇이 달라졌나(2)산업] 만성위기에 빠진 한국경제.. 공장 10곳 중 7곳만 돌아간다

■기업 빚도 눈덩이처럼 쌓여

기업들이 빚을 갚아 나갈 능력도 상실하고 있다. 기업부채도 지난 2015년 말 기준 2400조원에 달한 뒤 회복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또 국내은행 부실채권은 15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폭증했다.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이미 30조원을 돌파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1·4분기 말(38조1000억원) 이후 15년 만에 최대 규모다. 전체의 93%를 넘는 29조2000억원의 기업대출이 부실화된 채권이었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STX조선해양, 창명해운과 구조조정이 한창인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취약업종 여신이 대거 부실화된 여파다.

이미 부실채권 규모가 지난 2001년 수준을 넘겼다는 해석도 있다. 사실상 부실채권이지만 '정상' 여신으로 분류되고 있는 채권들이 부실채권 통계에서는 빠졌다는 것이다.

조선업과 해운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부실채권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우조선의 은행권 여신만 해도 2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 여신은 수출입은행 12조6000억원, 산업은행 6조3000억원, 농협은행 1조4000억원 등 국책은행에 집중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향후 조선업 등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부실채권 등 은행 자산건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며 "자산건전성 분류를 통한 적정 수준의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손실흡수능력을 강화해 나가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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