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일에는 전 세계의 랜드마크 건물에 파란색 불빛이 켜진다. 파리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이집트 피라미드, 한국 인천대교와 서울 N타워 등이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아 'Light it up blue'(파란색 붉을 밝혀라)라는 캠페인에 동참한다. 한국에서도 올해 10회인 세계자폐인의 날 행사가 지난달 2일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가수 이상우씨의 오프닝 무대를 시작으로 국립경찰교향악단의 웅장한 합주,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씽씽합창단, 온누리사랑챔버오케스트라, 드림위드앙상블, 당나귀난타팀의 공연까지 풍성한 볼거리가 가득한 공연이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공연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훌륭한 연주였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아동들이 공연 틈틈이 함성을 지르고 공연장을 돌아다니고 무대로 올라가도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는 점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가수 신효범씨가 갑자기 무대로 올라온 발달장애아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 아동에게 "내년엔 아줌마랑 같이 공연하자"고 제안하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우리는 '인권'이라는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노인, 어린이, 노숙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들도 나와 같이 더운 여름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고 영화관에 가서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꿈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 타인에게 존중받으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봉사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인권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안경을 꼈다. 그 당시엔 안경 낀 사람을 이상하게 봤다. 안경 껴서 야단도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경을 꼈다고 해서 차별하지는 않는다. 장애도 그런 것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안경을 낀 것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곧 올 것이다."
양 대법원장이 말한 이런 사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우리와 똑같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 우리도 어떤 장애든 하나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 우리에게도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받아들인다면 이런 사회는 곧 올 것이다. 자폐아동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치매 어르신, 탈북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밝은 불이 밝혀지는 따뜻한 나라를 꿈꿔 본다.
이번 행사와 한국 자폐인 인권 향상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고 있는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김용직 변호사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제2, 제3의 김 변호사가 탄생해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인권 친화적인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5월의 따뜻한 봄날, 푸르디푸른 나뭇잎들 사이 살랑거리는 저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퍼지기를 기원해본다.
박종흔 법무법인 신우 대표변호사 대한변협 재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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