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물론 그러면 성공할 확률은 높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다양성의 시대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작정 한 우물을 집요하게 파다 허송세월하기 보다는 빠른 판단력으로 새로운 우물을 파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주니어 골프 선수들에게 '골프를 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투어에서 성공한 프로가 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투어에서 성공할 확률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프로가 되는 것도, 되고 나서도 고행의 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경기인 외에도 지도자, 골프장 경영인, 코스 관리자, 코스 설계자, 클럽 제조자 등 파낼 우물은 많고도 많다.
이렇듯 과감한 진로 변경으로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해비치CC 허명호(45) 총지배인이다. 허 지배인은 국내 골프장에서 몇 안되는 경기인 출신이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프로 골퍼였던 부친 허재현(77)씨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그의 목표도 투어 프로였다. 그리고 26세 때 프로가 됐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다.
그런데 그랬던 그에게 예상치 못했던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1996년에 스승이었던 곽흥수씨가 헤드프로로 있던 경기도 여주 클럽700CC(현 블루헤런)로 자리를 옮긴 게 인생 항로를 바꿔 버린 계기가 됐다. 대신 못다 이룬 투어 프로의 꿈은 동생 석호가 채워줬다. 허 지배인은 "소일거리로 했던 업무 처리를 하는 걸 보고 곽프로님이 '선수보다는 골프장 경영 쪽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이인희고문님께 말씀 드린 게 계기가 됐다"고 진로를 바꾸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고 1998년에 개장한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인 수업을 받게 된다. 그는 그 곳에서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세 때 9홀 퍼블릭 골프장 지배인 자리에 올랐다. 그것은 당시로서는 큰 화제였다. 비록 퍼블릭이긴 했지만 국내 골프장 최연소 지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인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자원해서 4년간 재무, 기획 파트에서 근무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러면서 회계 관리사 자격증이라는 보너스를 얻었다. 꾸준히 어학공부를 한 것은 물론 실무에 도움이 되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부족한 공부를 계속했다. 물론 경기인 출신으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선수 생활하면서 좋은 골프장을 많이 다녀본 경험이 코스 관리를 하는데 있어 플레이어 입장에서 디테일하게 보게 된다"며 "오는 10월 전홀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체득한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생각이다"고 기대감을 나타낸다.
허 지배인이 해비치에 부임한 것은 지난 2014년 8월로 올해로 5년째다. 해비치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모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5년째 근무한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데이터로 증명된다. 그가 부임한 첫해에 3만7000명이었던 내장객이 매년 증가하더니 작년에는 4만9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매주 월요일 휴장, 3개월간 동계 휴장을 감안했을 때 18홀 골프장으로서는 엄청난 내장객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영업 수익도 늘었다.
허 지배인이 직원들에게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는 포인트가 있다. 다름아닌 '상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다. 그것을 위해선 직원들의 서비스도 있지만 코스 관리자와 밥 만드는 사람(조리사)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허 지배인의 그러한 경영 철학 때문인지 이 곳의 음식맛은 업계에서 정평이 나있다. 전체 매출액 130억원 중에서 20억원이 식음파트에서 나온 것에서 그것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 지배인은 "주변 골프장들과의 경쟁에서 이른바 '나홀로 길'을 가야할 때 힘들었다. 처음에 흔들릴 수 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고급화 전략을 고수하면서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으로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한다음 좋은 손님들이 다시 오길 기다렸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른바 골프장 경영인 N세대인 그에게 한 가지 비젼이 있다. 허 지배인은 "먼 훗날 경기인 출신으로 성공한 골프장 경영인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게 목표"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다름아닌 팔순을 목전에 둔 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부친 허재현씨는 골프장에도 종사해 이포CC 상무를 끝으로 업계를 떠났다. 허 지배인은 "동생 석호가 한국과 일본투어서 아버지의 경기인으로서 못다 이룬 한을 풀어줬다. 골프장 경영인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아버지 한을 풀어주는 것은 내 몫이다"고 비젼 설정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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