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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노량진 자습실 문 잠그고 '열공'..쪽방촌엔 가족 '그리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4 12:30

수정 2018.02.14 12:30

14일 민족대명절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 노량진 한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실 문을 잠근 채 수험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김규태 기자
14일 민족대명절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 노량진 한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실 문을 잠근 채 수험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김규태 기자


14일 민족대명절 설 연휴(15~18일)를 하루 앞두고 서울 노량진 학원가 수험생들은 고향행(行) 대신 학원 문을 걸어 잠그며 ‘열공’하고 쪽방촌의 독거노인들은 자식들이 올까 가족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키웠다.

이날 오전 공무원, 경찰, 교사 임용 학원 등이 모여 있는 노량진은 수험생들로 북적였다. 한 수험 학원에서 만난 경찰 공무원 준비생 이영호씨(29·가명)는 설 연휴 동안 학원 특강을 신청하는 등 일정을 빽빽하게 채웠다. 다음달 24일 시험이 있기 때문에 귀향을 한 해 미뤘다고 했다. 이씨는 “설 연휴에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는 있지만 지난 3년 명절 때마다 외롭게 지내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전했다.
이씨는 올 시험에 반드시 합격해 추석에는 한우 선물세트와 월급 봉투를 들고 충북 청주에 있는 집에 가고 싶은 바람이다.

■시험에 꼭 합격해 추석 때는 한우 선물이라도...

날씨가 쌀쌀해지자 한 학원 자습실에는 300여명의 학생들이 수면양말을 신고 어깨에 두꺼운 담요를 두른채 형법, 형사소송법 등을 공부하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자습실 문을 잠금장치로 걸어 잠갔다. 수험생들이 지각을 하면 들어갈 수 없고 입실한 상태에서는 밖을 나갈 수 없다. 이날 한 수험생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출입 명부에 사인을 하고야 자습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연휴 기간 스스로를 감금한 채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박인형씨(28·여)는 “연휴 기간 흐트러질 수 있어 아침 기상 모임을 갖고 자습스터디를 한다”며 “수험생끼리 서로 감시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영호씨가 인근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학원 자습실로 향하고 있다. 이씨는 올해도 설 연휴 학원에서 수험공부를 하기로 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14일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영호씨가 인근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학원 자습실로 향하고 있다. 이씨는 올해도 설 연휴 학원에서 수험공부를 하기로 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최근 취업난이 심해지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덩달아 높아지면서 수험생들이 연휴를 마음 놓고 쉬기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시 7·9급 공채시험의 경우 1613명 선발에 13만9049명이 몰려 경쟁률이 86.2대1에 달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인기 설 특강은 빈자리가 없고 자습실도 설 당일만 빼고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14일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도 찾아오는 외부인을 찾기 어려웠다. 이곳에 사는 독거노인들은 설 연휴를 홀로 보내 외롭다고 전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14일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는 설 연휴를 앞두고도 찾아오는 외부인을 찾기 어려웠다. 이곳에 사는 독거노인들은 설 연휴를 홀로 보내 외롭다고 전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쪽방촌의 독거노인들은 이번 설에는 가족들이 찾아올까 오매불망 기다렸다. 이날 오후 설 연휴를 앞둔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성림 할머니(86·가명)는 “딸이 보고 싶으면 가끔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다. 사진이라도 봐야 마음이 좀 나아진다”고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 김 할머니는 약 2평(6.6㎥) 남짓한 방 안에 밥솥, 주방기구와 이불을 한 데 놓은 채 10년 이상 살고 있다. 슬하에 3남매를 뒀지만 그동안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혼자가 익숙하지만 외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김 할머니는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며 “며느리와 다툰 뒤 아들은 발길을 끊었고 딸은 젊을 때 외국에 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 할머니가 매일 보는 거울과 탁자에는 서로 다른 포즈의 딸 사진 4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혹여 자식들 찾아올까...

2016년 서울시가 쪽방촌 주민 827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0%는 '연락할 사람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최근 1년 내에 가족 등이 방문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47.3%가 '아무도 방문한 적 없다'고 했으며 '방문할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는 비중은 39.1%였다. 이곳 쪽방촌에는 600여 세대가 공존하고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 설이 다가와도 외로움이 커지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날도 쪽방촌을 찾는 외부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간혹 봉사단체원들이 와서 도시락을 전달해주는 게 전부였다. 지난달 5일에는 이곳에서 화재가 나 주민 1명이 숨지기도 했지만 안부전화를 받은 노인은 드물었다. 박순영씨(64·여·가명)는 “불이 났을 때 (자식들에게) 연락이 따로 오지는 않았다”면서 “이제는 혼자가 익숙해도 초등학교 들어갈 손자가 보고 싶어 설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박씨는 자식들이 오면 15년 전처럼 떡국을 끓여 다 같이 먹고 싶다고 한다.

14일 김성림 할머니는 이번 설 연휴에 자식들이 올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탁자와 거울에 놓인 딸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식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사진을 본다고 전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14일 김성림 할머니는 이번 설 연휴에 자식들이 올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탁자와 거울에 놓인 딸의 사진을 가리키며 자식들이 보고싶을 때마다 사진을 본다고 전했다. 사진=김규태 기자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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