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담, 도대불, 갯당, 불턱, 소금밭…가장 제주다운 문화 아이콘
[제주=좌승훈기자] 제주의 포구는 제주사람들의 삶의 종합적인 국면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먹고, 살고, 일하고, 분노하고, 꿈꾸는 현실과의 친화력까지 포용하고 있다.
섬 속의 섬, 우도 최북단 하늬바람의 길목인 전흘동에 자리잡은 포구는 ‘개맛’이다. 동네 이름을 붙여 ‘전흘동개맛’이라고 한다.
■ 소섬 최북단 하늬바람 길목, 전흘동 개맛
‘맛’은 ‘입구’나 ‘길목’을 뜻하는 제주말이다. 포구는 안캐와 밖캐로 나눠져 있다. 포구 앞에는 ‘앞톤여’기 있어 파도의 거센 흐름을 막아준다. 이곳은 우도의 여느 다른 포구에 비해 수심이 매우 낮아 테우나 풍선(風船)과 같은 무동력 배들도 ‘사울대’나 ‘공쟁이대’를 장착해야 했다.
‘사울대’는 5~7m가량의 길쭉한 나무다. 포구를 벗어나기 위해 밀어주고, 키 대신 방향을 결정한다. 배에 따라 1~3개가 쓰이고, 삼나무를 많이 썼다.
‘공쟁이대’는 배의 앞부분에 30㎝가량의 나무를 비스듬하게 덧붙여 장애물을 헤쳐 나갈 때 쓰는 도구다. 주로 대나무를 쓴다
우도의 또 다른 포구, 하우목동의 ‘우무개’는 천혜의 ‘넓미역’ 어장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넓미역’은 말 그대로 넓은 미역이다. 100% 자연산이다. 양식 미역은 폭이 좁아 ‘줄미역’이라고 부른다.
한떄 바다농사로서 ‘미역’바다는 가장 큰 소득원이었다. ‘미역’바다는 가을에 뿌린 보리싹이 파스름하게 돋아나는 늦가을부터 시작된다. 이때가 되면, 물결에 밀려 하늘거리는 새 미역을 볼 수 있다.
■ 천혜의 우도 넓미역 어장…‘낚시거루’ 장관
우도에서는 ‘해경’을 ‘허채’라고 표현했다. 미역해경은 금채기간을 정해 미역바다를 감시하던 것을 푼다는 뜻이다.
금채기간 동안, 도둑 물질로 미역을 채취하다 발각되면, 그 해녀 집은 샅샅이 수색을 당하게 된다. 또 미역은 당장 압수되고, 이에 합당한 벌금도 물게 했다.
미역 허채일은 마을마다 다르다. 어촌계가 중심이 돼 서로 모여 공동 채취 일을 정했다. 일단 날이 정해지면, 우도는 연중 가장 바쁜 아침을 맞게 된다.
새벽 닭이 울기가 바쁘게 아침을 차려먹고 바다로 나갔다. 물론 공평한 채취를 위해 정해진 입출항 시간은 꼭 지켜야 했다. 입출항 신호 도구로서는 깃발·나팔·패류고동 등을 사용했다.
‘낚시거루’는 ‘넓미역’을 건지는 배다. 우도의 낚시거루 뿐 만 아니라, 우도 건너 성산포와 구좌읍 종당·시흥, 멀리 제주시 화북 등지의 ‘낚시거루’까지 동원됐다.
배에서는 칼쿠리로, 해녀들은 ‘곳물질’을 통해 ‘넓미역’을 채취했다.
‘곳물질’은 바닷가에서 그냥 헤엄을 쳐 나가서 물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배를 타고 나가서 물질을 하는 ‘뱃물질’과 다르다.
이곳 해녀들의 극성스러움은 ‘불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불턱’은 물질이 끝난 후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휴식을 위하던 장소다. ‘화제’의 장소이기도 하다.
‘물질도중 물안경에 물이 들었다’ ‘숨 길이가 짧았다’ ‘채취된 해산물을 물 밖으로 갖고오다 떨어뜨렸다’ ‘전복이 어느 구멍 안에 있다’ ‘돌에 발이 걸려 혼났다’ 등 온통 물질과 해산물에 대한 얘기가 오간다. 물론 이제는 옛말이다. 어장이 예전만 못하고, 해녀들의 고령화로 해녀 수도 계속 줄고 있기 때문이다.
■ 앞바다에 멜우럭 ‘우글우글’…지금은 ‘옛말’
고기잡이는 '보재기'의 숙명이다. 출어를 알리는 동력선의 통통거림과 선상작업의 고달픔을 잊기 위한 '보재기'들의 흥얼거림이 시작됐다. 바다 깊은 곳, 그 어딘가에 우글거리고 있을 고기 떼를 쫓아 움직임도 더욱 부산해졌다.
이들은 이 바다에서 그저 고기만 잡는 게 아니다. 꿈을 낚는다. 희망을 건져 올린다.
어로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고깃배가 동력선으로 바뀌고 항해술도 발달해 큰 어려움은 없다. 과거 풍선을 타고 어로작업을 하던 때는 우도 5~6해리 근해에서 방어잡이를 하던 것도 간 큰 사람이나 했다.
다만 어족이 문제다. 어획량이 예전만 못하다.
그 흔하던 우럭 씨도 말랐다. 우럭이라고 해서 다 같은 우럭이 아니다. 가장 흔한 게 ‘멜우럭’이다. 멸치를 미끼로 쓴다고 해서 ‘멜우럭’이다.
‘감팽이 우럭’과 ‘검펑우럭’은 색깔로 구분한다. ‘감팽이’는 검은 빛을 띠고, ‘검펑’은 붉은 색을 띤다.
‘솔치우럭’은 말 그대로 ‘솔치’처럼 생겼고, ‘맹내기우럭’은 깊은 바다에서 잡힌다. 눈이 툭 튀어나왔다고 해서 ‘눈탱이우럭’이라고도 한다. 작은 몸집과는 달리 입질이 세다.
그러나 지금 이 바다는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할 뿐 만 아니라, 전설(?)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개발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이 원인이다. 사람들은 콘크리트에서 편의를 얻고 있다.
그러나 콘크리트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의 상징이다. 이 삭막한 구조물 때문에 우리는 소통(疏通)을 잃고 있다.
제주도내 포구도 마찬가지다. 크든 작든, 모두가 개발 대상이었다.
어선 세(勢)가 쇠락하여 포구로서 쓰임새를 다했는데도, 주민 숙원사업이라며 매년 준설작업을 했고, 방파제도 계속 확장됐다.
제주 선민들의 생산기술 문화유적으로서, 포구의 가치를 조망할 틈도 없이 대부분 원형을 잃었다. 현재 그나마 옛 원형을 가늠할 수 있는 곳으로는 한림읍 귀덕1리 ‘모살개’, 남원읍 하례1리 ‘망장포’, 성산읍 신양리 ‘질너리원개’ 등 제주도내 110여개 항・포구 중 몇 안 된다.
보존과 개발은 대립적인 게 아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현재 한림읍 귀덕 1리의 ‘큰개’ 포구를 복원하고 있다.
‘큰개’는 안캐・중캐・밖캐로 축조돼 있다. 주변은 모래 바닥이어서 푸르다 못해 연초록에 더 가깝다. 포구 정면에 자리잡은 ‘큰여’의 거북이 등대는 포구의 운치를 더한다.
또 갯당인 ‘할망당’의 위세는 대단하다. 인근 한림 오일장에서 돼지를 사고 지날 때면, 적어도 돼지머리 3개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돼지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고 한다.
할망당 출입도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어서, 염소(未)・소(丑)・개(戌) 날에만 허용된다.
이곳 '보재기'들은 지금도 아무 탈 없이 어로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할망당의 영험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 옛 포구 복원…제주 대표 문화관광자원 기대
제주의 전통 포구 복원사업의 핵심은 ‘포구’ 그 자체다. 스토리텔링 개발이라든지 올레 길 연계와 주민소득 창출은 그 다음이다.
무엇보다도, 기존 제주성곽・환해장성 복원사업에서 제기됐던 오류를 최소화해줄 것을 바란다.
기존 전통 포구의 석축 구조와 방법, 모양새를 보다 정밀하게 살펴봄으로써, 이 사업이 제주 섬을 대표하는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의 전통 포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제주적이고,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엣 제주의 포구와 원담, 도대불, 불턱, 용천수 터. 갯당, 바닷길, 고기밭, 소금밭, 방사탑….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드는 풍경이지만, 이미 자연 속에 녹아서 동화돼버린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5/5 끝]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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