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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그린 그림과 꼭 닮은 인형…산타가 만들어준 줄 알아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9 17:27

수정 2018.07.19 17:46

[감동시리즈-우리함께]
④‘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
4년전 아내가 암센터 입원했는데 윗병동이 어린이병동이었어요
아내가 아이들 보고 ‘참 예쁘다’고… 그래서 시작했어요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 인형을 만들었던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벌써 4년째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어주는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 인형을 만들었던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는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벌써 4년째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어주는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하루 종일 일과 일상을 공유했던 반려가 한순간 사라졌다. 삶에 중요한 의미였던 아내가 가고, 홀로 남은 그에게는 둘이 나눴던 약속만이 남았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으로 인형을 만들어 선물하는 일, 그것이다. 아픈 아이들에게 조그만 기쁨이라도 되고 싶다며 시작한 일은 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자 사명이 됐다.

지난 13일 찾아간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51)의 경기도 일산 사무실은 인형들 천국이었다.
채 완성되지 않은 인형들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하얀 곰과 빨갛고 파란 색색깔의 인형들은 복도와 사무실 곳곳에서 사람들을 반기며 찌는 듯한 더위에도 입가에 웃음을 띠게 했다.

인형은 동심의 대명사다. 어린 시절, 유독 정을 줬던 인형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일까. 반평생을 인형과 함께 해 온 박 대표의 얼굴은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과 달리 해맑아 보였다.

■"60 넘으면 인형 선물하며 살자 했는데…"

더운 날씨에 솜인형의 옷을 입히고 색깔을 더하며 진땀을 흘리는 이들로 가득한 사무실을 건너, 가장 안쪽 대표 사무실 문을 열자 기자를 반긴 건 역시 다양한 인형들이었다. 그동안 제작한 수십개의 인형들이 줄 세워진 책장을 비롯해 사무실은 인형들과 알록달록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는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도 있었다. 많은 인형들 속에 숨겨져 한눈에 찾아내기는 힘들었지만, 수호랑과 반다비는 그의 회사가 만든 대표 작품 중 하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마스코트 인형들도 그의 회사에서 탄생했다.

30년 넘게 인형을 만들어온 그가 최근 공을 들이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아이들이 보낸 다양한 그림 편지를 인형으로 그대로 구현해 선물하는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4년 전입니다. 아내가 난소암으로 국립암센터에 입원했는데, 그 윗병동이 어린이병동이었죠. 투병 중에도 아내가 그 어린 아이들을 보고 '참 이쁘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이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한 건 아내였습니다."

회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사의 설립자이자 메인 디자이너는 아내 장금신씨였다. 일에 한참 매진하다 병원 생활로 한동안 손에서 일을 놓은 장씨의 제안에 박 대표도 흔쾌히 동참했다. 병실에서 부부는 짬짬이 인형을 만들어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 인형을 아이들 부모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은 인형을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으로 믿었다. 장씨는 투병 생활 와중에도 어린 환자들을 위한 인형을 만들며 행복해했다. 그러나 반드시 건강을 회복할 거라 다짐했던 아내는 재작년 11월 끝내 병마를 떨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 대표는 "'그동안 인형으로 먹고 살았으니까 병이 낫고 우리 둘 다 예순이 넘으면 아이들에게 인형을 선물해주며 살자'고 했었다. 아내가 그렇게 가버리고 내가 이어서 하는 셈"이라며 쓸쓸하게 웃었다.

"아이가 그린 그림과 꼭 닮은 인형…산타가 만들어준 줄 알아요"

■"잃어버린 인형 친구를 찾아드립니다"

그의 사무실 한 편에는 커다란 곰 인형 '고마'가 서 있다. '고마'는 북극에 사는 곰인데 우체부다. 파란색 모자를 쓴 하얀 북극곰 '고마'는 아이들의 잃어버린 인형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를 상징하는 인형이자 박 대표의 분신 인형이다. "아이들이 곰을 부를 때 '고마 고마(곰아 곰아)~' 그러잖아요. '고마'는 꼬마 곰인데 '꼬마 꼬마~'도 고마와 어감이 비슷하고요. 저는 '곰아저씨'로 불리는데, '곰아저씨'에도 '고마'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고마'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어린이병동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좀 더 단단해졌다. 아픈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 아동센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까지 대상을 넓힌 것도 그 일환이다.

박 대표는 "예전에는 인형이 참 귀했다. 품에 안고 다니거나 특별한 애착을 가진 인형이었다면, 요즘은 좀 다르다. 쉽게 버리고, 쉽게 산다. 아이들의 소중한 친구였던 인형이 소모품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30년 동안 이 일을 하다보니, 그런 점이 참 안타깝다"고 했다. 기부라는 좋은 일에, 아이들에게 그 옛날의 소중한 정서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고마'가 탄생했다.

첫 해 50여개로 시작해 지난해는 300개가 넘는 인형을 아이들에게 보냈다. 아이들 손에 건넨 인형만 500개가 넘는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각기 다른 인형으로 탄생시킨 것이라 더욱 특별하다.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로 제작한 인형들은 판매용으로는 만들지 않는다. 올해는 매일 하나씩 만든다는 생각으로 모두 365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단지 인형을 보내는 것만 아니라 우체부 고마의 이름으로 편지도 보낸다.

박 대표의 사무실에는 아이들이 보낸 인형 그림이 말 그대로 널려 있다. 두툼하게 쌓인 스케치북 낱장 뭉치가 이곳저곳 무심히 놓여있지만, 에어컨 바람에 한 장이라도 날아갈까 무거운 물건으로 꾹 눌러놓은 모습에서 한장 한장 정성껏 살펴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보낸 그림을 다 인형으로 제작하나'라는 질문에 "95% 이상 다 만든다"고 박 대표는 답했다. 간혹 아이들의 뛰어난 상상력 탓에 도저히 인형으로 제작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고마'를 대신 보낸다. 매년 주제도 바뀐다. 지난해에는 '가족'이었고, 올해는 '친구'다. 학교나 유치원 친구, 친구 같은 아빠나 엄마, 같이 사는 반려동물, 상상 속 친구까지, 아이가 느끼는 '친구'를 그려서 보내면 된다.

■"좋은 일 한다지만, 얻어가는 게 더 많아"

사실 그가 '기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연예인 부부가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게 7년 전 계좌를 하나 만들어 탄자니아에 사는 소녀, 굴리(11)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별 생각없이 시작한 터라, 자동이체를 한 뒤에는 솔직히 잊어버렸다. 그런 그에게 굴리가 사진과 그림편지를 보냈다. 아내와의 사별로 한창 힘들던 시기였다. "'보통 부부가 한 50년 같이 산다면, 우리는 150년을 산다'는 말을 아내와 자주 했었다. 그만큼 함께 한 시간이 길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먹고 쉬고, 눈 뜬 뒤 모든 시간을 아내와 함께 했다. 그런 아내가 없으니, 많이 헤맸고 힘들었다. 그때 굴리의 편지가 왔는데, 네 살이었던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낳기만 하고 내팽겨친 자식이 커서 돌아온 것' 같았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컴패션에 양해를 구해 굴리가 그린 인형을 보냈는데, 그걸 만들며 새롭게 의욕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오는 9월에는 컴패션과 함께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간다. 고마 인형 500개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에 들어간 자금은 3000만원 정도. 자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는 그에겐 작지 않은 돈이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선물은 줄 때 행복하잖아요"라는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좋은 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아요. 스트레스도 많이 없어졌고, 삶의 또 다른 의미가 생겼어요. 같은 인형을 만들지만, 일로 접근했던 몇 년 전과 이 일을 해 온 지난 4년은 많은 차이가 있더라고요."

물론 기부를 한다고 생업에 소홀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일은 직원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 대표가 '지속가능한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월에 나만의 인형을 위한 스토리 펀딩을 한다. 돈키호테 같은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호응해주는 분들이 꽤 있더라. 뉴스에서는 힘들고 무서운 일들이 많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거다.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보니, 예전보다 우리 회사 인형들이 더 잘 만들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박 대표는 이어 "젊을 때 참 열심히 살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런 공장, 이런 회사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게 저여서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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