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0.7% 여성혐오·남성혐오 ‘심각하다’ 인식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혐오표현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혐오적·경멸적 표현 또는 외국인 근로자와 난민들에 대한 민족적·인종적 차별 표현 위주로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가 혐오표현의 새로운 측면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2년여가 흐른 지금, 여성혐오와 관련된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사회적으로 더 큰 논란을 낳고 있다. 동시에 여성에 대한 폭력적·차별적 행태를 폭로하기 위한 미러링 전략으로서 남성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혐오적 표현을 되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남성혐오 커뮤니티들이 만들어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성 간의 극단적인 차별적·경멸적 표현은 온라인에서 흔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들이 이러한 표현을 자주 접하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성별에 기인한 혐오 표현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혐오 및 남성혐오에 대해 국민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성별에 기인한 혐오 및 혐오표현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해당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응답자의 속성(성별, 연령대 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등을 20~50대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알아보았다.
■응답자 80.7% 성별 혐오표현 ‘심각하다’고 답해
여성혐오, 남성혐오와 같이 성별을 기반으로 하는 혐오표현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28.5%는 매우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고, 약간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52.2%에 이르렀다. 결국 응답자 대다수(80.7%)는 성별 기반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15.0%(전혀 심각하지 않음 0.7%, 별로 심각하지 않음 14.3%)로 나타났으며, 관심 없다를 선택한 사람은 매우 소수(4.3%)에 불과했다.
성별 기반 혐오표현의 심각성 인식이 응답자 집단별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추가적으로 분석했다. 우선, 성별에 따라서는 여성(85.8%)이 남성(75.6%)에 비해 해당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령을 기준으로는 어린 세대일수록 심각성을 더 강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했지만, 특히 ‘매우 심각하다’를 기준으로 보면 어린 세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높은 편이었다. 구체적으로, 20대(48.0%)는 40대(22.0%)와 50대(14.0%)의 2~3배 수준으로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더 많았다.
한편, 기혼자(이혼, 사별 포함)에 비해 미혼자나 비혼주의자가 성별 기반 혐오표현을 조금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미혼(87.9%)이 비혼(80.8%)에 비해 비율이 조금 더 높게 나타난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에 대한 입장을 지지 정도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물었다. 조사 결과, ‘탈코르셋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를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36.3%)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40.4%)보다 조금 적기는 했지만 그 비율차(4.1%p)가 큰 편은 아니었다. ‘관심 없다’고 답한 비율은 23.3%로 확인됐다. 따라서 응답자 5명 가운데 2명은 ‘탈코르셋 운동’이나 ‘혜화역 시위’를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편, 2명은 지지하지 않는 편, 1명은 무관심한 편이라고 대략 정리해볼 수 있다.
■‘김치녀’, ‘한남충’ 같은 성별 혐오표현 넷 중 셋 알지만 쓰는 사람은 열에 한 명
성별에 따른 혐오 표현과 관련한 경험을 알아보고자 흔히 쓰이고 있는 표현들 중 사례 두 가지(‘김치녀’와 ‘한남충’)를 제시하고 그러한 표현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잘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36.5%였으며, ‘들어봤고 대략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응답자도 그와 큰 차이 없는 39.1%에 이르렀다.
‘들어는 봤으나 정확히 모른다’와 ‘들어본 적 없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18.7%, 5.7%였다. 결국 응답자들 4명 가운데 3명은(75.6%)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성별에 따른 혐오 표현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앞선 문항에서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표현을 ‘들어본 적 없다’고 답한 57명을 제외하고 943명의 응답자들에게 그러한 성별에 기인한 혐오 표현에 대한 경험 및 인식에 관해 몇 가지를 추가적으로 조사했다. 우선 응답자 본인이 해당 표현을 어느 정도 써봤는지를 물었는데, ‘자주 써봤다’와 ‘가끔 써봤다’는 비율은 각각 2.3%와 9.3%로 소수였고, ‘거의 써본 적 없다’가 35.1%, ‘한 번도 써본 적 없다’가 과반인 53.2%에 달했다.
사전 인지 결과와 종합하면, 본 조사의 응답자들은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표현을 알고는 있으나 평소에 잘 쓰지는 않는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어서 ‘김치녀’, ‘한남충’과 같은 표현이 여성이나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성별 혐오 표현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조사했는데, 그러한 표현을 알고 있었던 응답자 943명 중 대부분(92.9%)이 그렇다고 답했다(잘 알고 있었다 62.1%,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30.8%). ‘잘 몰랐다’와 ‘전혀 몰랐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5.5%, 1.6%로 나타났다.
여성혐오나 남성혐오 표현을 가장 많이 보거나 들은 경로를 물었는데, 인터넷 카페·커뮤니티가 33.6%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는 뉴스(신문, TV뉴스, 인터넷 뉴스사이트, 포털 뉴스서비스 등)와 SNS가 20% 중후반대 비율(각각 29.9%와 25.6%)로 나타났으며, TV 예능·오락 프로그램(6.5%),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서비스(4.5%)를 선택한 응답자는 소수였다.
응답자의 인구사회학적 속성에 따른 추가분석을 실시한 결과, 연령대에 따라 여성·남성혐오 표현을 가장 많이 접한 경로가 눈에 띄게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대의 경우, SNS가 45.2%로 인터넷 카페·커뮤니티(37.2%)보다 더 높았으며, 3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인터넷 카페·커뮤니티로 답한 응답자(43.4%)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40~50대는 뉴스에서 성별 기반 혐오표현을 들어봤다는 비율이 높은 특징이 있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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