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시민회의 이끄는 3人에 '자살없는 사회' 해법을 묻다
박경조 성공회 주교
"선진국 비하면 관련예산 턱없이 부족…자살문제에 관심 갖는 정당도 필요
생명은 소중하고 그래서 함께 가야한다는 걸 알려주는게 바로 종교의 역할"
△1944년생 △성공회성미카엘신학원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나눔과평화재단 이사장 △녹색연합 상임대표 △녹색사회연구소 이사장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
"자살예방의 날 앞두고 행사 열리지만 그때뿐…전문성 갖춘 공무원도 없어
언론도 유명인사 사망 쉽게 보도…자살이 삶의 도피처란 느낌줘서는 안돼"
박경조 성공회 주교
"선진국 비하면 관련예산 턱없이 부족…자살문제에 관심 갖는 정당도 필요
생명은 소중하고 그래서 함께 가야한다는 걸 알려주는게 바로 종교의 역할"
△1944년생 △성공회성미카엘신학원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나눔과평화재단 이사장 △녹색연합 상임대표 △녹색사회연구소 이사장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
"자살예방의 날 앞두고 행사 열리지만 그때뿐…전문성 갖춘 공무원도 없어
언론도 유명인사 사망 쉽게 보도…자살이 삶의 도피처란 느낌줘서는 안돼"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연간 자살 사망자수가 1만3000명이 넘는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2.5배다. 특히 10~30대에서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은 13년째 자살률 1위다. 부끄럽고 슬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오는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앞두고 '생명존중시민회의'를 주도하는 박경조 성공회 주교,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를 만났다. 곽인찬 파이낸셜뉴스 논설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종교계 원로들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 패자부활전이 없는 우리 사회구조가 원인"이란 진단을 내렸다. 급속한 산업화와 무한경쟁 속에 인간이 생명으로 존중하기보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해법은 뭘까. 원로들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금메달도 좋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 심지어 메달을 따지 못한 사람도 최선을 다했으면 박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존중시민회의는 지난 7일 시민사회 원로·시민단체·생명운동가를 중심으로 출범했다. 생명존중 문화를 형성하고 자살 예방 운동을 위한 시민단체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식 축하 메시지에서 "생명존중 문화운동은 자살로 인한 우리 사회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 곳곳에 생명존중의 씨앗이 뿌리내리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진행된 좌담회 일문일답.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자살률이 급등세를 보였다. 생명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진단한다면.
▲박경조 성공회 주교=3·1운동, 민주화운동, IMF 금모으기운동 등 우리 민족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똘똘 뭉쳐 이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였다. 공동체 의식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라 할 수 있다. 20년 전 외환위기가 터지자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그 바람에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때 우리 사회는 이들을 보듬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됐다. 양극화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특유의 공동체 의식이 무너졌다. 이것이 사람들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있다. 생명 존중 문제는 자살만 해당하지 않는다. 기계 문명의 발달로 산업화 속도는 빨라졌지만 안전관리 소홀로 인재(人災)가 반복된다. 예전엔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에서 불이 나면 큰 뉴스였다. 하지만 요즘은 '오늘은 차에서 불이 안 날까, 내일은 어디서 날까'를 생각하게 된다. 지진 등 자연재해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생명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한국 사회는 사람을 생명으로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본다. 기업은 노동력으로, 정치인은 유권자로, 교육계는 학생으로만 본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경제적,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 결과 실적 위주의 성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반면 공정성과 투명성 등은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됐다.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은 설 자리를 잃었다. 요컨대 최고만 존중받고 최선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 결과 승자독식의 사회가 됐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러한 것들이 자살률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문재인정부는 100대 중점과제에 '자살률 감소'을 포함시켰다. 자살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을 해야 하나.
▲박경조 주교=자살 예방 관련 예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을 늘려 지역마다 자살예방상담센터를 만들어 궁지에 몰린 이들을 따뜻하게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당제도 고려해야 한다.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 농민을 대변하는 정당도 필요하지만 환경이나 자살률 감소 등을 중시하는 정당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 정당은 승자독식 구조다. 대선에서 이기면 모든 걸 얻고 지면 모든 걸 잃는다.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내세워 서로 타협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그런 점이 아쉽다.
▲박남수 전 교령=자살 예방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꾸준한 관심과 지속성이다. 천도교는 지난 2014년 보건복지부 장관과 자살 예방 관련 협약을 맺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뒤 어떻게 진행하자는 연락도 없고 제안을 해도 답이 없다. 해마다 9월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앞두고 종교단체와 생명운동단체들이 수많은 행사를 하지만 관심은 그때뿐이다. 사진 찍고 나면 끝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매년 자살 예방을 위한 예산을 책정하고 예산을 수립하지만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공무원들이 생명운동은 자기 분야가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공복(公僕)이 우리의 생각과 반대로 가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가공무원은 그대로 있지 않나. 모든 공무원에게 자살 예방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종화 원로목사=통계상 하루 36명, 40분당 1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잠재적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하루 300~400명에 달한다. 한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그 가족 전체가 피해자가 된다. 실제로 자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보다 8.3배가 높다고 한다. 정부는 개인의 자살이 가족을 파괴하고 국가의 근간까지 허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명관리를 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자살 예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생명운동의 큰 방향은 중앙정부가 정하되 구체적인 사항은 현장과 가까운 지자체에서 하는 게 좋다.
―무분별한 언론 보도가 자살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는데.
▲박남수 전 교령=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망사건이 자세하게 보도되면 사람들은 저렇게 쉽게 자살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언론 보도를 본 사람들이 자살을 마치 삶의 도피처처럼 느끼게 해선 안된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인데 낙태 건수는 한 해 수십만건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생명존중의 관점에서 낙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박경조 주교=우리는 생명, 곧 '살아야 할 존귀한 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생명 자체를 가장 중시하는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박남수 전 교령=천도교의 핵심인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천주(天主)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다'고 본다. 뱃속에 있는 생명도 하늘이 아닐까.
▲박종화 원로목사=낙태 문제를 종교적 신념으로만 말하긴 어렵다. 대신 공동체적 삶의 현상으로 보면 불가피하게 낙태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성폭행에 따른 원치 않는 임신 등 악행이 가져온 경우가 그런 예다. 그럴 땐 불가피하게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으면 한다. 다만 기본적으로 모든 출산은 존중받아야 하며, 하늘이 준 생명이라고 보고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입양 등을 통해 온 사회가 끌어안을 필요가 있다. 이런 따뜻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낙태도 줄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종교인으로서 다짐을 말해달라.
▲박경조 주교=생명이 세상 무엇보다 존엄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 종교가 할 일이다. 이를 통해 공동체를 함께 일궈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종교인조차 인간을 단지 헌금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박남수 전 교령=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은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엄한 존재라는 의미다. 저는 생명운동을 전체 교역자, 지방 교구장, 선교사 등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박종화 원로목사=기독교 신앙에 따라 인간은 신이 창조했으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신의 품성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자살에 반대하는 것은, 자살이 자기 안의 신의 형상까지 죽이는 것, 곧 '살신'이기 때문이다. 인권 존중은 곧 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권 유린은 곧 신권 유린인 셈이다. 인권 존중 없이 신을 섬긴다는 것은 가짜 종교다. 신의 마음 속에 인간이 있고 신의 세계에 인간이 있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하다.
사회=곽인찬 논설실장
정리= spring@fnnews.com 이보미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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