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곳곳을 비추는 형광등 불빛.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형광등 불빛은 20세기 문명을 대변한다. 형광등에 무슨 이런 거창한 수식어를 다느냐 하겠지만, 사실 형광등은 전력 효율성이 좋고 강한 빛을 내는 LED에 밀려 수년 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간판업계에서 이미 네온사인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댄 플래빈은 이러한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나보다. 주위에 너무 흔하게 있는 것들도 우리의 인생이 언젠가 소멸되듯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뉴욕 출신 작가 댄 플래빈의 개인전 '댄 플래빈의 빛 1964-1995'이 열리고 있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는 이러한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줄 그의 작품들이 가득 차 있다.
산업 생산품인 '형광등'을 작업의 주재료로 활용해 빛과 색으로 공간을 재창조해 관람객들에게 일루전(illusion)을 경험하게 하려 했던 그의 1960년대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인 1995년까지의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던 1953년 미 공군으로 한국 오산의 제5공군본부에 주둔하며 기상병으로 근무했던 댄 플래빈은 1956년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 콜롬비아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1961년 뉴욕의 저드슨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벽에 금색 형광등 하나를 대각선으로 설치한 최초의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를 구상했던 1963년부터 그가 별세한 1996년까지 상업적으로 이용가능한 형광등으로 설치물 또는 빛과 색의 '상황들'을 만들어낸 그는 일관적이고 경이로운 작품세계를 펼쳤다.
미니멀리즘의 대가인 도널드 저드와 가장 가까운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던 댄 플래빈은 동시대에 미술뿐 아니라 인테리어, 건축 등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고 모더니즘 이후 다양한 실험이 행해졌던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국내외 주요 전시에서 소개됐던 작품과 더불어 사적 공간에 설치 가능한 형형색색의 소형 작업들을 선보였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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