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걸이는 접합 부위가 매우 세밀해 눈으로는 잘 확인되지 않을 만큼 세공 기술이 뛰어나고 작은 구슬 장식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또 입체형인 펜촉형 장식물 안팎으로 작은 금 알갱이를 촘촘하게 부착했다.
서문에 의하면 이익태는 제주목사를 역임하면서 알게 된 제주도의 열악한 생활상과 누적된 폐단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수록된 내용은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부임하기까지의 여정, 재임기간 중의 공무수행, 제주도 부임시의 행적과 그 과정에서 지은 시·제문·기행문 등이며 특히 제주와 관련된 여러 기록물과 조선인을 포함한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의 표류에 관한 기록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 중 1687년 제주도민 김대황이 출항 후 파도에 휩쓸려 베트남에 이르렀다가 귀국한 여정을 기록한 '김대황표해일록'은 조선 시대 베트남 관련 기록으로 희소성이 있다.
높이 67cm의 단아한 규모에 머리에는 연꽃과 불꽃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가사는 두벌 겹쳐 입은 모습에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렸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신체의 자연스러운 양감이 돋보인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져 역삼각형을 이루었으나 날렵하고 갸름하게 처리한 턱선, 높게 돌출된 코, 자비로운 인상에 실재감 있는 이목구비의 표현 등 1650년대를 전후로 아담하고 현실적인 조형미를 추구한 무염이 참여한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보물 제455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와 더불어 신라 시대 장신구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작품으로 이번 명칭 변경은 보물 제455호가 1966년 일본에서 환수된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임에도 불구하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로 인식되어 온 것에 대해 바로잡는 조치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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