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은 자신의 사진이 올라와 퍼지는 것도 모릅니다…몰래 사진 찍어서 올리는 행위 처벌 강화해주세요. 제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 올라온 여자친구 불법촬영 게시물을 수사해달라는 국민청원은 지난 14일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일베 관련 청원이 동의자 20만명을 넘긴 것은 지난 2월 '일베 폐지' 요청 이어 올해 두 번째다.
2010년경부터 출현한 일베는 수년간 누군가를 모욕하고 조롱하며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청와대는 앞선 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웹사이트 폐쇄도 현행법상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눈에 띄는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성희롱과 몰카' 끝없는 일베의 폐해
올해 역시 일베에선 성희롱과 몰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7월엔 70대 노년 여성을 상대로 성매수했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진엔 70대 여성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다.
해당 게시물의 작성자는 자신을 32세 남자라고 소개하며 돈을 아끼기 위해 74세 박카스 할머니와 성매매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70대 여성의 사진을 최초로 촬영·유포한 사람은 일베 회원이 아닌 서초구청 직원 A씨(46)였다.
A씨는 성매매를 한 뒤 여성을 몰래 촬영해 음란사이트 2곳에 올렸고, 평소 일베 회원이었던 B(27)씨가 이를 자신의 경험담인 양 올린 것이다. B씨는 범행의 이유를 밝히며 "관심받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18일 일베엔 '여친 인증' '전 여친 인증' 등 제목의 글이 연달아 올라오기도 했다. 일베 회원들은 사진 속 여성이 자신의 여자친구거나 전 여자친구라고 주장했다.
일부 글에는 여성의 신체뿐 아니라 얼굴까지 고스란히 노출됐다. 글 아래로는 도 넘는 성희롱성 댓글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일베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지난 10일엔 일베의 성희롱을 견디지 못해 고통을 호소한 글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여고생으로 알려져 큰 파장이 일었던 치어리더 황다건 성희롱 사건이다.
황다건 양은 같은 날 일베에 올라온 성희롱 글을 캡처해 SNS에 공개했다. 해당 캡처엔 황다건 양을 두고 벌인 일베 회원들의 성희롱이 담겼다.
황다건 양은 "치어리더라는 직업의 대가가 이런건가. 저런 글을 보게되면 그날 하루는 다 망치는 것 같고 하루종일 이 생각밖에 안난다"고 털어놨다. 황다건 양은 2000년생으로 올해 불과 만 18세다.
■ 모르는 사이에 스며든 '일베'라는 공해
일베의 폐해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일베라는 공해가 알게든 모르게든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어묵 장면에 세월호 참사 보도화면을 삽입한 것은 올해 방송가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다. 제작진은 담당 직원으로부터 영상을 제공받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사건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같은 달 KBS 2TV '연예가중계'에서는 일베 이미지 사용을 지적하며 원본과 조작 이미지를 비교하던 중, 원본 이미지도 일베의 조작된 것을 사용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MBN도 '뉴스8'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리그의 레알 마드리드 팀을 소개하며 조작된 엠블럼을 사용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KBS는 "제작진의 명백한 실수"라고 고의성을 부정했고, MBN은 해당 뉴스의 VOD 서비스를 삭제 처리했다.
방송사가 일베 이미지를 고의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일베가 사회에 더욱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선 2월엔 일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광고를 타임스스퀘어에 걸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놀랍게도 이 글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글엔 노 전 대통령 얼굴과 힙합가수, 코알라를 합성한 모습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하는 '운지'라는 단어도 실렸다.
타임스스퀘어 광고대행사는 해당 광고 내용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통상적으로 정치나 종교와 관련된 메시지는 내보내지 않는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 거듭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 또 다시 동의자 20만명 돌파한 '일베 처벌' 청원…이번에는?
일베에 대한 처벌과 사이트 폐쇄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선 2월 동의자 20만명을 넘긴 '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이트 폐쇄 요청'의 청원자는 "(일베가) 정치·사회적으로 이슈된 모든 현안에 대해 날조된 정보를 공유함은 물론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합성사진들을 게재하고 있다"며 일베를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청와대는 이 청원에 대해 "명예훼손 등 불법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후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정보의 처리 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할 수 있다"고 답변을 내놨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내놓은 조항에 따르면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해당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베에 있는 정보 중 70%가 '불법정보'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같은 달 26일 SNS를 통해 "일베 폐쇄 추진은 표현의 자유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후퇴시키는 행위"라며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 공간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적은 바 있기도 하다.
10월 8일 방통위는 9월 한 달간 반인륜적 패륜행위 표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집중 심의해 일베, 워마드, 디시인사이드 등 사이트의 게시물 총 497개를 삭제했다.
방통위는 "최소 규제의 원칙하에 누리꾼들의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고 있으나, 재미 혹은 조회수 늘리기 목적의 패륜·혐오표현은 어린이, 청소년의 정서함양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실제 범죄로까지 번질 우려가 크므로 시정요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방통위의 시정요구에도 불구하고 앞서 밝힌 듯 일베의 만행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일베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은 또다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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