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대왕암공원 곰솔 1만5000그루 일본군 식재설
“러일전쟁 이후 일본해군 시설 은폐 목적으로 조림”
인터넷에 퍼진 소문에 지자체도 홍보 외면
병충해 입고 한 때 수백그루 제거돼.. 환경단체 보호로 회복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에 또 다시 위기
전수조사도 여부도 확인 안돼 현황조사 시급
“러일전쟁 이후 일본해군 시설 은폐 목적으로 조림”
인터넷에 퍼진 소문에 지자체도 홍보 외면
병충해 입고 한 때 수백그루 제거돼.. 환경단체 보호로 회복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에 또 다시 위기
전수조사도 여부도 확인 안돼 현황조사 시급
【울산=최수상 기자】 해송(海松·곰솔) 군락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울산 대왕암공원 내 소나무 1만5000그루가 일본 군사시설 은폐를 목적으로 심은 일제의 잔재라는 낭설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다 대규모 관광개발이 추진되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 가짜뉴스에 잃어버린 100년 곰솔 군락의 명성
4일 울산지역 사학계와 환경단체에 따르면 해방 이후 ‘울기공원’으로 불리며 울산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자리잡은 대왕암공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야유회와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조선소를 찾은 산업시찰단의 단골 코스로 각광을 받아왔다. 20m이상의 큰 키를 자랑한는 수령 100년짜리 해송 1만5000그루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2000년대 초 해안경비용 철책이 철거되면서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대왕암이 개방되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해송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러일전쟁 때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 주둔지를 은폐하기 위해 소나무들을 심었다는 낭설까지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자 울산시의 각종 홍보물과 관광책자 등에서도 해송에 대한 설명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 몇 그루 되는지 몰라, 전수조사 여부도 불확실
지난 2016년부터 울산 동구가 대왕암공원을 홍보하기 위해 운영하는 인터넷사이트에서조차 ‘송림’이라는 단어 하나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어떤 종류의 소나무며, 수령은 얼마나 됐는지, 몇 그루가 있는 지 기본적인 정보조차 쉽게 찾을 수 없다. 특히 현재 1만5000그루로 알려져 있지만 관리를 맡고 있는 지방정부가 실제로 소나무 수를 전수 조사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울산 동구청 관계자는 “1만5000그루로 알고는 있지만 언제 누가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모른다”며 “현재도 전수조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근거로 환경단체 일각에서는 일본군이 심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보존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지방정부가 소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현대식 관광시설을 유치하려 한다고 의심해 왔다. 의심은 결국 현실로 이어져 지난 2017년에 어린이테마파크 건립공사로 송림 일부가 사라졌고 현재는 울산시가 민자 형태로 대형 리조트 건립과 해상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 일본군 심었다는 소문은 근거 없는 억지
일본군이 심었다는 소문에 대해 지역 사학계에서는 근거가 미약한 억지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소문의 근거는 일본군이 1904년 러일전쟁 때 급히 나무로 만들어 세운 울기등대에서 비롯됐다. 러일전쟁 후 1910년 일본이 동해 항로 이용을 위해 근대식 등대로 고쳐 짓고 해군기지를 설치하면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역 사학계와 환경운동단체의 시각은 다르다. 일본군이 소나무를 심었다는 근거가 뚜렷하지 않는데다 당시 일본 해군기지 규모와 역할도 대규모 소나무로 은폐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대왕암 일대는 곶(갑·甲)의 형태를 띠는 지형이다. 등대를 세우기에도 안성마춤이지만 무엇보다 삼면이 바다여서 말이 쉽게 도망가지 못하고 호랑이의 습격으로부터도 보호가 용이해 말 목장으로 제격인 곳이다. 울산 동구 방어진일대는 고려 때부터 말 목장이 세워졌고 조선4대 화가인 단원 김홍도가 목장 관리자인 ‘감목관’이라는 벼슬을 얻어 7개월간 머물던 곳이다. 목장은 초지가 대부분이고 나무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 목장이 폐쇄된 후에는 해안가에 곧잘 자라는 곰솔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는 게 지역 사학계의 시각이다.
■ 소규모 일본군 부대... 은폐 이유 없어
울산동구문화원 지역사연구소 장세동 소장은 “일제가 러일전쟁 승리 후 울기등대를 새로 지은 뒤 찍은 주변 풍경 사진에는 조림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키 작은 곰솔들이 함께 찍혀 있다”며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룬 곰솔들은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빠르게 번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옛 방어진중학교 자리(대왕암공원 남쪽 해안)에 주둔했던 일본군은 방어진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그들의 소유인 방어진철공조선소, 통조림공장 등을 보호하기 위한 부대였고, 해방 이후 남아있던 막사와 탄약고의 규모를 볼 때 소규모 부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러한 부대를 은폐하기 위해 이 많은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울산생명의 숲 윤석 사무국장은 일본군이 심었다는 근거가 없다면서 대신 “목장 폐지 후 당시 일산동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이 등대산(지금의 대왕암공원)을 넘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곰솔을 심은 것으로 안다”며 주민들에 의한 인공조림에 무게를 둔 견해를 밝혔다.
■ 곰솔은 스스로 잘 자라는 나무
곰솔의 특성도 이들 주장을 뒷받침한다.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곰솔은 훌륭한 어미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묘목을 심는 것보다 자연 번식을 유도하는 것이 경제적인 나무다. 또 방풍림 조성은 2년생 묘목을 정보당 3000본씩 심어야 한다. 대규모 조림 가능성을 밑받침해 준다.
그동안 대왕암 곰솔은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에는 단 한 그루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숲이 훼손되면서 솔껍질깍지벌레의 습격을 받아 한 때 수백그루가 죽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016년부터 울산생명의 숲이 현대자동차, S-OIL, SK에너지(주), 경동도시가스 등 기업들의 후원으로 소나무 살리기에 나섰고 지금은 회복세에 있다.
하지만 울산시가 동구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강한 의지를 갖고 대형 리조트 건립과 해상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어 또 다시 훼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연간 9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대왕암공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100년이 된 해송 숲 때문”이라며 “숲이 훼손되고 시멘트 건물이 들어서면 대왕암공원은 오히려 손님을 잃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어림잡아 1만5000그루라고하지만 정확히 대왕암공원에 몇 그루의 해송이 있는 지 어떤 기관도 정확하게 아는 곳이 없다"며 "송림 보호를 위해서 전수조사부터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곰솔 : 잎이 억세고 곰 같다고 해 곰솔이란 이름이 붙었다. 또 바닷바람을 좋아하는 까닭에 해송(海松)이란 이름도 붙었다. 줄기색깔이 검정색을 띠고 있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하며, 외국도 해송을 검은 소나무라 부른다. - 국립수목원 -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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