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o
사일로(silo)의 본뜻은 저장고다. 유럽 농가에서 겨울에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저장하는 탱크가 그것이다. 선박에서 하역된 시멘트 등을 저장하는 원통형 창고를 지칭하기도 한다. 근래엔 외부와 담을 쌓고 소통하지 않는 조직을 일컬을 때도 흔히 쓰인다.
우리의 폐쇄적 조직 문화에 대한 자성론이 번지고 있다. 지난 10일 포스텍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의 특강 내용이 17일 한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한국을 거대한 '사일로 집단'에 빗댄 그는 "국내 기업이 한국인만으로 이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기적"이라고 우리 안의 배타주의를 비판했다. 이어 "사일로 간 이동이 빈번한 미국처럼 '순혈주의'를 없애고 해외 인재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대안도 제시했다.
반도체 신화를 일군 주역인 권 회장의 지적은 사실 새삼스러울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끼리끼리 문화'의 폐해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 조직이나 여타 집단에서도 만연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사일로 철옹성'을 쌓고 있는 듯한 국내 대학가 풍토를 보라.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다른 대학 출신 교수들을 우대해 학문의 '동종교배'를 막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같은 맥락에서 헌법상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개점휴업도 불길한 징조다. 벽에 부딪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그나마 '유일하게' 쓴소리하던 김광두 부의장이 사퇴한 후 아예 열리지도 않고 있어서다.
바야흐로 지구촌은 이른바 '수축사회'에 접어들 참이다.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른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으로 모든 산업 부문에서 공급과잉 추세다. 반면 저출산으로 인해 국가도, 기업도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창출과 고급 기술인력 충원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드는 인재풀에서 순혈주의라는 이름으로 '갈라치기'까지 한다면 4차 산업혁명기에 적합한 융복합형 인재는 어디서 구할 텐가. 어찌 보면 토종 보이밴드 방탄소년단(BTS)의 성공 스토리는 '사일로 문화'에서 벗어나야 세계 무대에 우뚝 설 수 있음을 웅변하는 생생한 증거일 듯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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