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선거용 모병제는 안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0 17:31

수정 2019.11.20 17:42

청년 구애 제스처가 아닌
장기적 안보·경제 상황이
징병제·모병제 선택 기준
[구본영 칼럼]선거용 모병제는 안된다
요즘 모병제 전환 논란이 뜨겁다. '인구절벽'이 일차적 도화선이었다. 현행 60만명 수준 상비군 유지가 어려워지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얼마 전 "상비병력을 2022년까지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이 '단계적 모병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로 기름을 부었다.


어느 나라에서든 병력수급제도에 대한 여론은 가변적이었다. 미국의 두 스포츠 영웅의 비화를 보라. '메이저리그의 전설' 테드 윌리엄스는 두 차례나 징집됐다. 경제 대공황과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포연이 노블레스 오블리주(가진 자의 도덕성)와 애국심을 고취한 셈이다. 그는 1943~45년(2차 세계대전)과 1952~53년(6·25 전쟁)에 참전한 뒤 '마지막 4할타자'라는 위업을 남겼다.

반면 '세기의 천재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1967년 징병을 거부,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다. 법정에 서는 바람에 3년 공백기를 가졌다. 그러고도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전 분위기 덕택에 링으로 복귀해 챔피언 벨트를 되찾았다.

이렇듯 '징병제냐, 모병제냐'에 대한 선호도는 그 나라의 안보나 경제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탈냉전과 함께 유럽에서도 한때 모병제 전환이 큰 흐름을 탔다. 하지만 근년에 징병제가 되살아나고 있다. 우크라이나(2014년)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징병제를 부활시킨 나라들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안보 위기감이 다시 커지면서다.

2001년 징병제를 폐지했던 프랑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부분적으로 징병제 부활을 추진 중이다. 그는 대선에서 애국심 고취 차원에서 '보편적 국방의무' 도입을 공약했었다. 지금 한반도 안보 상황은 유럽국들보다 더 엄중하다. 더욱이 우리 경제 사정이 프랑스보다 낫기나 한가. 오죽하면 여당 지도부조차 "분단국가에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특수성이 있다"(김해영 최고위원)며 모병제 시기상조론을 말하겠나.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중장기적 과제라고 선을 그었다.

병력자원 부족을 청년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발상은 더 황당해 보인다. 아무런 재원대책이 없어서다. 민주연구원은 병사 월급으로 300만원 수준을 상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부사관 확충조차 예산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적게 잡아도 연간 10조여원에다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군인연금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국민개병제는 70년 유지해온 제도다. 모병제로 전환하려면 헌법부터 고쳐야 한다. 설령 병역법 개정만으로도 된다 하더라도 중상류층 청년들은 빠지고 '흙수저들만의 군대'가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두고두고 갈등요인이 될 게 뻔하다. 총선 코앞에서 불쑥 징병제를 폐기하겠다는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 이유다. 당장 실현가능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청년층 표심을 노린 '선거용 제스처'라는 의심이 들면서다.

모병제든 징병제든 각기 장단점은 있다. 국가적·시대적 상황에 따라 모범답안은 있을지 모르나 단일 정답은 없다는 말이다.
독일도 통일 후 21년 지난 뒤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현 메르켈 정부는 다시 징병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걱정한다"고 했다.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모병제를 선거용 카드로 써먹어선 안 될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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