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전 1936년 베를린올림픽 우승자 고 손기정옹(당시 76세)을 인터뷰하면서 이를 실감했다. 병아리 스포츠기자의 빛바랜 스크랩을 들춰 보니 "식민지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달리고 또 달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그의 육성이 적혀 있다. 그는 일본 선수단과 따로 비행기 아닌, 시베리아횡단 화물열차로 베를린으로 갔었다. 정차 때마다 홀로 망국의 한을 달래는 맹훈련을 하면서….
이후 세계 스포츠 제전에 '극한 스포츠' 종목 하나가 추가됐다.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창설되었고, 2000년 제27회 시드니 하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트라이애슬론(triathlon)'이다. 영어로 '3'을 뜻하는 '트라이(tri-)'와 '경기'를 가리키는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다. 올림픽코스 기준으로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 등 세 레이스를 휴식 없이 연이어 치른다. 우리말로는 철인3종경기다. 그만큼 극한의 인내심과 강철체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동호인은 늘어나는 추세다.
이처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순수 아마추어 종목에서 최근 참담한 사태가 벌어졌다.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최숙현 선수가 전 소속팀(경주시청)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뜩이나 연습과 경기 중 선수 각자가 숨 막히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종목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더 안타깝다. 감독과 팀닥터, 선배 선수들이 폭력행위를 자행한 게 맞다면 당연히 일벌백계해야 한다. 감독을 소홀히 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등 유관 기관의 책임도 무겁다. 이번 사태를 체육계의 고질적 폭력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