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다른 사람이 버린 줄 알고 수거한 쇼핑백을 다시 돌려줬지만 절도죄로 유죄가 인정된 폐지수거 노인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은 위헌으로 취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절도의 고의가 없는데도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A씨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최근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기소유예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폐지 수거일을 하는 A씨는 지난해 3월 폐지 등을 수집하던 중 B씨의 주거지 맞은편 건물 주차장에서 B씨가 이삿짐을 정리하던 중 밖에 내려놓은 쇼핑백을 발견했다. A씨는 쇼핑백 내용물을 잠시 살펴본 뒤, 쇼핑백을 폐지 수집 리어카에 실었고, 이후에도 계속해 근처에 있는 빈병 등을 수집했다.
B씨는 같은 날 쇼핑백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어 1시간 반 뒤 다시 경찰서에 전화해 ‘집 근처에서 A씨의 리어카에 쇼핑백이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고, A씨가 해당 쇼핑백이 길에 있어 버려진 줄 알고 가져갔다고 하며 쇼핑백을 돌려줬으므로 A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이 A씨에 대해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자 A씨는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범행 동기·수단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형식상 불기소처분에 해당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헌법소원을 통해 불복할 수 있다.
헌재는 “이 사건 쇼핑백은 청구인이 이를 발견할 당시 쓰러진 채 내용물의 일부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 있었고 근처에 다른 이삿짐이나 이사 차량이 있지 않았던 점, 청구인이 쇼핑백을 가져간 직후 계속해 인근에서 빈병 등을 수집하고 그곳에서 도보로 1분 이내 거리에 있는 폐지 정리 장소에 이 사건 쇼핑백을 놓아둔 점, 폐지 정리 장소는 외부에 공개된 장소로 쇼핑백을 찾아다니던 피해자에 의해 비교적 쉽게 발견된 점, 청구인은 2시간이 채 안돼 쇼핑백을 그대로 돌려준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 사건은 절도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요건으로서의 절도의 고의와 불법영득의사는 그 성질상 그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해 입증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 등에 비춰 청구인에게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피청구인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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