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법 위반이지만 업주는 외면
지자체 시정명령 외엔 강제력 약해
영어 못읽는 노인층 답답함 호소
‘외국어가 세련’ 인식도 변화 필요
지자체 시정명령 외엔 강제력 약해
영어 못읽는 노인층 답답함 호소
‘외국어가 세련’ 인식도 변화 필요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8주년을 맞았지만 시민들 삶 속에서 한글은 여전히 홀대받는다. 소위 '핫하다'는 가게 간판에는 어김없이 알파벳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적지 않은 업체는 간판에 아예 한글 표기조차 하지 않는다. 윤씨 사례와 같이 알파벳을 읽지 못하는 인구가 노인층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글을 병기하지 않는 사례는 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어 없는 간판 현행법상 '불법'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간판에 한국어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건 불법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과 그 시행령이 외국문자 상호 표기 시 한글병기를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법에 따라 최대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간판이 법 위반이라는 판례도 나와 있다. 지난 2004년 서울중앙지법이 국민은행과 KT가 간판에 한글을 병기하지 않은 것이 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옥외광고물에 한글을 병기하도록 한 법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실질적 효력이 없는 '훈시규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피고들이 외국문자만 기재했거나 한글을 현저히 작게 기재한 것은 한글병기조항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현대사회에서 모국어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은 국제관계 고립을 초래하는 편협한 태도일 수도 있지만 공동체의 공용어를 지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행 강제하는 경우 극히 드물어
판결 이후 16년이 흘렀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외국어 간판이 넘쳐난다. 일부 지자체에서 지도·감독이 이뤄지고 있다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외국어로만 된 간판이 불법인 줄 모르는 담당 공무원마저 있을 정도다.
서울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한글간판을 달라고 지도하는 건 권장사항 아닌가"라며 "여기(옥외광고물 관련 업무담당) 있는 동안 외국어 간판이 불법이라 바꿔 달라고 한 사례는 없다"고 언급했다.
서울 염창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윤모씨도 "한국어를 같이 안 쓴다고 해서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문제가 되는 줄 전혀 알지 못했다"며 "간판을 바꿔야 하는 건가"라며 난감해했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을 부과토록 한 규정이 있을 뿐 과태료 부과규정이 없어 구속력이 약하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법을 위반해 외국어로만 된 간판을 달더라도 관할 관청에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것이다.
현행법과 법원이 불법으로 판단했지만 거리엔 외국어 간판이 넘쳐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시민의식에 답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어가 외국어보다 세련되지 않다는 인식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현정 세종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은 "(간판에 표기된 문자는) 일반 국민들이 보고 영향을 받는 공공언어이기 때문에 외국어로 그냥 쓴 것에 대해서 제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아직까지는 강제력이 없어서 실효성이 없는데, 가능하다면 일반 국민의 인식을 높여서 외국어로 된 간판이 세련됐다거나 새롭다고 생각하는 인식을 개선해 우리말로 쉽게 읽을 수 있는 간판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 김지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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