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탁이 있는 삶' 김재훈 대표
서른일곱 청년이 농업을 '돈 되는 사업'으로 키웠다
수매기관은 농민 안중에 없고
e커머스선 농산물이 미끼상품으로
초당옥수수·자색당근 등 스페셜티 작물
팔기 위해 온라인 직영몰 만들어
농사도 돈 될 수 있다 보여주려
신품종 더단감자 개발하고
월급 농부 고용해 직접 농사
'식삶' 설립 7년만에 연매출 120억
서른일곱 청년이 농업을 '돈 되는 사업'으로 키웠다
수매기관은 농민 안중에 없고
e커머스선 농산물이 미끼상품으로
초당옥수수·자색당근 등 스페셜티 작물
팔기 위해 온라인 직영몰 만들어
농사도 돈 될 수 있다 보여주려
신품종 더단감자 개발하고
월급 농부 고용해 직접 농사
'식삶' 설립 7년만에 연매출 120억
재훈 대표(37)는 지난 2018년 돈 되는 법인을 모두 정리했다.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한 '식탁이 있는 삶(이하 식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식삶은 김 대표가 '돈 벌 생각 없이' 농민들을 위해 2014년 설립한 스페셜티(고부가가치) 푸드 기업이다.
해외 신품종을 들여오거나 국내 품종을 개량해 농가에 보급한다. 농가가 생산한 고부가가치 식자재를 온라인 직영몰 '퍼밀'에서 판매한다. 김 대표는 "다른 사업으로 회사가 이익이 나고 있었다"며 "농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식삶을 공익사업법인으로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한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쓴맛을 본 김 대표는 돈 되는 일은 다 했다. 특히 농산물 저장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농산물을 싸게 매입해서 대기업에 넘겨 시세차익을 봤다. 하지만 본인이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이미 공룡이 돼버린 e커머스 업체들과 중간 유통업체가 촘촘하게 끼어 있는 오프라인 유통구조 속에서 농가들이 고수익을 내긴 어려운 상황. 농가가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디자이너, IT, 마케팅 담당자를 채용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농산물 관련 콘텐츠를 제작해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했다.
공익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곧 사업성을 확인했다. 김 대표는 "당시 회사가 재배하던 초당옥수수, 자색당근 등을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며 "가치 있는 사업만 하자고 결론을 내린 뒤 스페셜 푸드와 e커머스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적당한 수익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농민들과 함께하는 일이니까 좀 못해도 된다'는 말이다. 농업은 원래 돈이 안된다는 인식이 깔린 발언이다. 김 대표는 "자생 가능한, 돈이 되는 농업을 만들고 싶다"며 "왜 농민들이라고 벤츠 타고 아르마니 입으면 안되냐"고 반문했다. 식삶은 설립 7년 만에 매출 12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 농업계'라는 표현을 썼다. 어릴 때부터 평생 농부로 성실히 살아온 부모님을 지켜보며 쌓인 정체성이다. 지금도 "눈 감고도 고추농사, 마늘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한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식삶 사무실에서 김재훈 대표를 만났다. 그는 회사가 추진 중인 사업과 우리나라 농업 현실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왜 농업인가.
▲부친이 마늘농사, 양파농사가 천직인 줄 아시고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새벽이슬 맞고 나가서 밥도 제대로 못 드시면서 열심히 일하시는데 왜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 농민들이 공익을 위해 농사 짓는 건 아니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다. 그런데 자생하기도 어렵고 수익도 안된다. 뉴질랜드나 스위스에서는 똑똑한 친구들이 농업에 뛰어든다. 더 많은 돈과 부를 축적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농업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농업이 그간 자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농업 정책을 입안할 때 농민을 못 배우고 가난한 하층민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농약, 사료, 유류비 지원 등 질 낮은 형태의 보조금만 전달한다. 기술을 개발해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공을 들여 키운 농작물이 그 가치를 반영한 제값을 못 받는 문제도 크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고 한다. 비료를 더 주고 가지치기를 더 해서 맛있는 사과를 키워도 공판장에 내놓으면 대충 키운 사과와 같은 값을 받는다. 수매기관이 농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위해 일하고 있다.
―요새 대세인 e커머스 입점 방법도 있다.
▲e커머스에서 농산물은 미끼상품으로 전락했다. 주류 오픈마켓들은 치킨게임을 하면서 저렴한 상품만 찾고 있다. 직접 농가를 접촉하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신속하게 물건을 받기 위해 중간에 벤더를 둔다. e커머스들이 벤더에게 저렴한 가격을 요구하니까 벤더도 농민들에게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 농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벤더에게 낮은 가격에 납품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식탁이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른가.
▲다른 곳에서 판매하지 않는 특별한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식생활에 대한 만족감과 즐거움을 전달하고 있다.
―일반 작물을 키우던 농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 같다.
▲쉽지 않았다. 불신이 컸다. 기존 계약재배 문화에서 신뢰를 잃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량 매입하겠다는 계약을 하고 농산물을 다 키워도, 기업들은 다른 농가가 조금 더 싸면 그쪽 농산물을 구입한다. 계약을 무시한다. 힘없는 농가는 대응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현실 탓에 전량 수매하겠다는 약속뿐만 아니라 농법을 보급하고 재료비를 선도금으로 지원해도 설득하기 어려웠다. '다 키워놨는데 네가 안 가져가면 손해를 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어떻게 설득했나.
▲스페셜티 작물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줬다. 회사가 직접 농사를 지어 수익이 나는 걸 직접 확인시켜주니 그제야 농민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평생 일반 작물을 키우셨던 부친께서도 인식이 바뀌신 게 불과 2, 3년밖에 안 됐다. 처음엔 "이걸 지어서 어디에 파느냐"고 하셨다. 직접 개발한 신품종 '더단감자'도 직접 강진에 1만2000평을 장기임대했다. 월급 주는 농부를 고용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 돈이 된다는 걸 일반 농가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식탁이 있는 삶이 직접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농민들의 영역을 침범할 생각은 없다. 농민과 기업은 생물처럼 계속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초당옥수수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종자를 처음 들여오고 재배 매뉴얼을 구축한 뒤 대규모로 재배해 성공 사례를 보여줬다. 이제 역할이 바뀐다. 농민들이 대규모 재배에 나서고 우리는 마케팅, 콘텐츠 제작 등 농민들이 재배하는 데 모든 인프라를 지원하는 역할로 변신한다.
―새로 도전하는 영역은?
▲초당옥수수를 연중 맛볼 수 있는 스마트팜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옥수수는 6월부터 9월까지 난다. 이미 신기술을 개발해 5월부터 초당옥수수를 받아볼 수 있지만, 더 나아가 매달 초당옥수수를 출하하는 스마트팜을 도입한다. 오는 8월 착공에 들어간다. 올해 12월부터 매달 신선한 초당옥수수를 받아볼 수 있게 된다. 해외 진출도 추진 중이다. 캘리포니아와 몽골 쪽에는 해외 농장을 만들려고 한다.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더 빠르게 추진됐을 텐데 아쉽다.
―대학생 때부터 창업에 뛰어들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되도록이면 창업하지 말라고 말한다. 절대 쉽지 않다. 만약 창업해도 절대 실패하면 안된다. 실패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큰 실패든 작은 실패든 피해가 엄청나게 크다. 언론에 조명 안돼서 그렇지 똑똑한 젊은이들이 폐인 생활하는 경우가 꽤 많다. 본인의 아이템이 대기업과 경쟁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진입장벽이 구축돼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거꾸로 절차탁마의 자세로 150% 이상 노력과 준비를 했다면 그만큼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도 된다. 간절하고 절박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김재훈 대표는 △37세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국제통상학과 △지식경제부 산하 GTEP사업단 사업팀장 △㈜피앤케이인터네셔날 대표이사 △농업회사법인시즌랩㈜ 대표이사 △㈜식탁이있는삶 대표이사(2014년 11월~)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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