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요구, 수술실CCTV 6]
공사장·어린이집·도로 CCTV 설치
법원·심판정은 녹음·속기 제도 정착
공적 감시 확대, 폐해보다 효과 크다
[파이낸셜뉴스] 국회서 수술실CCTV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폐쇄적 공간에 대한 공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법원과 노동위원회, 어린이집, 공사장에 이르기까지 녹음이나 CCTV를 통한 공적 감시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술실에 CCTV를 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공사장·어린이집·도로 CCTV 설치
법원·심판정은 녹음·속기 제도 정착
공적 감시 확대, 폐해보다 효과 크다
특히 수술실에선 의식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료범죄가 잇따르는 형편이다. 64개월 간 드러난 유령수술만 112건에 이르며, 성폭행이나 추행 등 범죄는 그보다 훨씬 많다. 선배 제지에도 마취된 환자 성기를 만진 인턴의사에게 고작 정직 3개월 처분만 하고 고발하지도 않았던 서울아산병원 사례는 의료계가 최소한의 자정능력조차 잃었다는 방증이다. <본지 6월 17일. ‘[단독] 선배 제지에도 마취된 女환자 성기 만진 의사··· 시민단체가 고발’ 참조>
수술실CCTV 불허 서울시, 공사장엔 왜?
26일 서울시와 시민사회단체 등에 따르면 수술실CCTV와 같은 취지의 공적 감시수단이 사회 전 분야에 범죄예방수단으로 정착되고 있다.
관계인 요청 시 녹음·속기제도를 운영 중인 법원에선 아예 제도를 의무화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고, 노동위를 비롯한 각종 준 사법기관 심리에선 녹음이 필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뒤 아동학대 사건을 보다 명확하게 가려낼 수 있게 돼 불필요한 분쟁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 이후엔 CCTV로 공사장 내부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감시체계가 논의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브리핑을 통해 서울시 내 민간 공사현장 상황을 24시간 녹화하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사장 정보화 시스템’을 구축해 당장 내년 3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공사장 내 CCTV 설치는 일부 제도화돼 있다. 서울시 주택건축본부가 2019년 12월에 마련한 ‘건축물 해체공사 안전관리 매뉴얼’엔 24시간 녹화되는 CCTV를 공사장 내 4대 이상 설치하고, 공사가 완료되면 녹화본을 구청에 제출하도록 명시돼있다. 시의 이번 대책은 CCTV 영상을 비롯해 각종 수단을 동원해 안전문제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오 시장의 이번 정책은 최근 국회 제일 현안으로 떠오른 수술실CCTV 문제와 관련해 눈길을 끈다. 민간공사장 내 CCTV 설치와 운용, 녹화본 제출 등을 의무화한 것이 수술실CCTV법과 취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수술실CCTV법이 마취돼 의식이 없는 환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취지의 법안이란 점에서 공사장 내 CCTV 설치보다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놀라운 점은 오 시장이 수술실CCTV 설치엔 부정적 입장이란 점이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수술실CCTV 입법운동을 주도해온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후보 전원에게 공공의료원 수술실에 CCTV를 다는 방안을 공약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오 시장 캠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이로 인해 경기도와 전라북도 공공의료원에선 운영 중인 수술실CCTV를 서울시 공공의료원 환자들은 이용할 수 없다.
법원도 속기·녹음 확대, "판사 태도 바뀐다"
공개재판이 원칙인 법원에서도 재판 이해관계자들의 알권리 및 무례한 일부 판사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도입돼 있다. 1995년 도입된 속기·녹음 제도로, 원고와 피고, 피고인 등 재판당사자 누구든 속기와 녹음을 신청할 수 있다. 법은 재판부가 속기와 녹음 요청을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선 관계자 요청을 요건으로 하는 속기·녹음 제도를 요청 없이도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해당 법안엔 재판을 영상으로 찍어 기록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당시 직능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속기·녹음 및 영상녹화가 소송경제에 반한다는 이유로 국회에 반대입장을 제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법안은 끝내 폐기됐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유출 우려와 비용부담, 소극적 의료행위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어 수술실CCTV법에 반대하는 현 상황과 유사점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선 속기와 녹음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속기와 녹음이 이뤄질 경우 판사가 재판 관계자를 존중하고 보다 성실히 재판에 임하는 태도를 보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모든 판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재판에 참여하는 당사자와 변호사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며 “(속기·녹음은) 부적절한 언행을 막아내는 데에 유효적절한 제도라고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 외에도 준사법기관인 중앙노동위와 지방노동위, 그밖에 각종 심판위원회 등 아예 속기와 녹음을 의무화한 곳도 상당수다.
어린이집 CCTV 의무화, 효과 뚜렷해
어린이집 CCTV 의무화 사례는 수술실CCTV 설치에도 긍정적 전례가 되어줄 수 있다. 거듭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 국회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지난 2015년 9월부터 본격 시행했다.
올해엔 개인정보보호법을 이유로 경찰이 CCTV 열람을 요구하는 학대피해아동 부모에게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는 문제에 대응해 보건복지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가이드라인을 새로 마련하기도 했다. <본지 1월 20일. ‘[단독] 아동학대 신고했는데 “CCTV 보려면 1억 들어”’ 참조>
제도 도입 초기엔 보육교사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불필요한 감시란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학부모들은 제도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보육교사의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부작용은 거의 보고되지 않은 반면, CCTV를 근거로 해결할 수 있었던 아동학대 사건이 상당해 유의미한 제도개선이란 평가가 압도적이다.
다만 의협에선 어린이집CCTV 설치 이후 아동학대 사건이 늘어난 점을 들어 수술실CCTV 설치 뒤 의료분쟁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공청회에 참석한 김종민 의협 보험이사는 “어린이집의 경우 오히려 제도 시행 이후 원내 아동폭행은 2017년 776건, 2019년 1371건으로 증가추세”라며 “CCTV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동을 폭행하는 사례도 현재 나와 있듯이 CCTV가 만능이 아니란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미애 위원(국민의힘)이 “알지 못한 사실을 이제는 발견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라며 “아마 환자들도 지금까지 몰랐던 걸 이렇게(수술실CCTV를 다는 걸 통해) 발견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위원은 이어 “이런 주장은 상당히 옳지 않다”며 “환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이에 김 이사는 “위원님 말씀에도 공감을 한다”고 말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시민의식 고양 따라 공적 감시도 확대
법정과 준사법기관 심판정, 민간공사장과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CCTV와 녹음 등 폐쇄성을 완화하고 공적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경향이 분명하다. 방범목적 등의 일반 CCTV와 개인용 자동차에 달린 블랙박스가 확대 보급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듯 공적 감시의 효용이 부작용을 압도한다는 인식도 시민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특히 CCTV가 없는 가운데 적발된 112건의 유령수술 사건(무자격자가 700건이 넘는 대리수술을 한 사례가 1건으로 포함되는 등 실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에서 보듯 CCTV를 설치할 경우 불거지는 사건이 적잖을 듯하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 의료계에서 논의 이전까지 선제적 대처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술실CCTV 설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란 지적이다.
수술실CCTV 설치를 주장하며 국회 앞 1인시위를 진행 중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는 “수술실CCTV를 포함한 환자보호3법은 환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의료계의 고육책이 될 것”이라며 “90%에 달하는 국민의 염원을 외면하지 말고 국회는 책임지고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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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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