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급으로 기량 더 높여야
지덕체 불균형한 체육정책도 문제"
지덕체 불균형한 체육정책도 문제"
허 위원은 한국 야구계를 향해 "이번 도쿄올림픽을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변화하지 않는다면 한국 야구의 미래도 없다"고 단언했다.
허 위원은 지난 3일과 8일 일본 도쿄에서 두 차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선수 본연의 '실력과 자세', 나아가 '지덕체'에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체육 정책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장 국내 팬들을 분노케 한 한국 야구의 이번 올림픽 패인에 대해선 "어쨌든 실력에서 밀린 것"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국내 투수의 평균 구속이 시속 142㎞인데 상대팀 선수들은 150㎞가 넘었다. 더욱이 미국 메이저리그의 톱 플레이어들이 빠진 무대가 아닌가. 이 실력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스윙도 한국에서 하던대로 하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허 위원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선 안 된다"며 "선수들이 안주하지 않고, 기량을 세계 정상급으로 더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간 꾹 참았던 얘기도 털어놨다. 올림픽 직전 터진 프로야구 선수들의 심야 음주 파동 사건이다. 허 위원은 "프로선수로서 기본적 의무, 책임, 상식을 저버린 행동이었다"며 "팬들이 갖는 상실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야구계가 이런 문제에 대해 일벌백계의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선배들이 제대로 토양을 갖추지 못해서 나오는 결과"라며 "야구계 문화를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허 위원은 "이제는 야구만 잘 해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면서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룰은 물론이고 인성, 품성, 사회적 기여 역시 모두 갖춰야 한다. 선수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 위원은 작심발언 내내 무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야구계 대선배로서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했다.
허 위원은 스포츠 교육의 불균형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이번 이스라엘 야구대표팀만 보더라도 스탠포드대, 예일대 등 명문대 출신들이 있지 않냐"면서 "한국 교육의 문제가 뭔가. 운동으로 성공하는 아이들은 1%밖에 되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스포츠맨들은 학업을 등한시하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또 체육으로부터 멀어져 기초체력이 저하돼 있다. 이 불균형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여러 문제들을 노정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이번 도쿄올림픽 육상에서 동메달을 딴 미국의 가브리엘 토마스는 하버드대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한 예비 의사다.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도 은퇴 후 의사 등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다. 올림픽은 물론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의 무대이나, 이 기회를 빌려 운동의 생활화, 선진 스포츠에 대해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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