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부지로 치솟던 천연가스 가격이 29일(이하 현지시간) 급락했다.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덕이다. 최대 20% 공급을 늘릴 것임을 예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은 이날 대규모 공급 확대를 예고했다. 국내 저장 규모가 목표치를 조만간 충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즈프롬은 11월 8일이 되면 국내 가스 저장시설을 모두 채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때가 되면 유럽에 가스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 가스 저장시설을 채우기 시작하라고 지시한지 이틀 만이다.
푸틴 대통령은 11월 8일을 가즈프롬의 공급 확대 개시 마감시한으로 제시한 바 있다. 독일·오스트리아에 있는 가즈프롬 가스 저장시설을 채우라고 명령했다.
푸틴이 유럽에 대한 가스공급 확대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럽내에 있는 가즈프롬 가스 저장고의 저장규모는 사상최저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때문에 러시아가 말과 달리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높았다.
그러나 이날 러시아가 방향을 틀어 공급 확대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가스 가격은 곧바로 급락했다.
영국 천연가스 기준물인 다음날 인도분 가스 가격은 BTU당 1.39파운드로 20% 가까이 폭락했다.
이달들어 영 천연가스 기준물은 BTU당 2파운드를 웃도는 수준에서 거래돼 왔다.
그러나 여전히 올해 초에 비하면 약 3배 높은 수준이다.
영국 12월 인도분 가스 가격 역시 15% 급락한 1.67파운드를 기록했다.
유럽 기준물은 12% 가까이 급락해 메가와트시(MWH) 당 65.70유로로 떨어졌다. 2주 전만 해도 100유로를 넘었다.
이날 가스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에너지 집약 산업의 숨통이 트이고, 가스가격 폭등세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도 일부 완화될 전망이다.
유럽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의 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에너지 가격 폭등세 등의 여파로 13년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전처럼 러시아가 말만 앞세우고 실제 공급 확대는 나몰라라 할 경우 가스 가격은 다시 급등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수개월간 주저하면서 이미 값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여서 이번 예고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에너지 거래업체 경영진은 "모든 것이 러시아와 관계돼 있다"면서 "공급이 증가할 것이란 희망이 마침내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가 가스 공급 확대에 나서더라도 유럽 각국이 올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워낙에 재고가 부족한 상태로 출발한 터라 겨울 날씨가 이전보다 추워지면 수요초과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또 러시아가 가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을 제한할 가능성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유럽이 힘든 겨울을 앞두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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