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구째 슬라이더는 145㎞. 볼카운트 1-1에서 던진 3구째 직구는 154㎞(96마일).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검지를 구부려서 던지는 134㎞ 너클 커브. 박건우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간신히 커트.
볼카운트 1-2에서 마지막 승부구는 155㎞ 빠른 공. 박건우의 배트가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배트는 공의 한참 밑을 지나고 있었다. 그만큼 직구의 위력이 빠르고 요란했다.
1일 서울 잠실구장서 벌어진 두산과 키움의 와일드카드 1차전은 팽팽한 선발 투수전이었다. 두산 선발 곽빈(22)의 투구도 눈부셨다. 1회 3번 이정후와의 대결이 짜릿했다. 볼카운트 3-2에서 포크볼로 가장 정교한 타자의 배트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두산에겐 달리 선택이 없었다. 두 외국인 투수는 부상 병동에 누워있고, 최원준은 지난달 30일 한화전서 소진됐다. 곽빈에 대해선 불안한 시선이 없지 않았다. 28일 SSG전서는 5이닝 2실점으로 좋았다. 탈삼진만 7개.
그 직전 LG전서는 3⅓이닝 3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일 와일드카드 경기서 곽빈은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 충분히 보여줬다. 4⅔이닝 1실점. 안우진의 투구가 워낙 돋보여서 그렇지 두산 미래의 에이스로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했다.
안우진은 6⅓이닝 2실점. 9개의 탈삼진이 빛났다. 5회 2사까지 14타자를 상대로 퍼펙트를 연출했다. 단지 기록상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완벽했다. 5회 첫 타자 김재환을 삼진으로 잡아낸 공은 155㎞ 직구. 6회에도 직구 구속은 단 한 차례도 15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안우진이 강펀치라면 원태인은 펀치와 테크닉을 함께 지녔다. 1위 결정전은 사실상 가을야구다. 6회 내야진의 실책이 없었더라면 무결점으로 마운드를 내려 왔을 것이다.
원태인, 곽빈, 안우진 이 셋을 보면 오래 전 최동원(당시 경남고), 김시진(대구상고), 김용남(군산상고) 세 명의 우투수 트리오가 떠오른다. 그들은 10년 이상 한국 야구의 버팀목 노릇을 했다.
지난 이틀 20대 초반 강속구 투수들의 호쾌한 투구를 보며 도쿄올림픽에서 위축되었던 어깨를 비로소 폈다. 지난 10여년은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 김광현(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현종(전 텍사스 레인저스) 등 좌투수들의 시대였다. 오랜만에 우완 정통파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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