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크라이나를 두고 서방과 대치중인 러시아가 정부 관료 및 국영 방송 사장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미국 등에 빨리 대답하라고 요구했으며 “미국의 머리에 총을 겨누겠다”는 발언도 나왔다.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아 세보드냐(러시아의 오늘)의 드미트리 키셀료프 사장은 20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나토가 그곳에 군사 시설을 만든다면 우리는 미국의 머리에 총을 겨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그럴 군사적 능력이 있다”며 “러시아 무기는 초음속 분야를 포함해 세계 제일이다”고 주장했다. 키셀료프는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언급하면서 “러시아 무기는 미국이나 영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미국에 도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러한 사태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반복하는 것이며 미사일 덕분에 싸우는 시간은 훨씬 짧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키셀료프는 러시아가 ‘레드 라인’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100% 그렇다. 이 문제는 러시아에게 생사가 달린 문제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와 발트해 3국은 모두 나토 가입국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나토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러시아와 갈등 이후 적극적으로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나토는 지난 2008년 발표에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받아주겠다고 밝혔으나 언제까지 가입한다는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마저 나토에 가입한다면 나토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는 만큼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레드 라인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서방은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명 안팎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내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잇따라 강력한 제재를 경고했다. 이에 러시아는 지난 15일에 캐런 돈프리드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에게 나토 확장 중단을 요구하는 안전보장안 초안을 전달하고 19일에 추가 내용을 덧붙였다. 보장안에는 폴란드와 발트 3국 등에서 나토 군대를 철수하라는 요구와 함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을 거부하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17일 발표에서 해당 보장안을 유럽 동맹들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러시아의 안보 요구에 즉각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시간을 늦출수록 상황이 매우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날 콘스탄틴 가브릴로프 오스트리아 빈 주재 러시아 대표부 군사안보·무기통제 협상 대표도 나토가 보장안에 신속히 답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그렇지 않을 경우 대안은 러시아의 군사 기술 및 군사 대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의 또 다른 차관인 알렉산드르 그루슈코도 18일 발표에서 군사적 시나리오를 정치적 과정으로 전환하는 대화를 준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토와 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쪽으로 대응한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이달 러시아 타스통신은 러시아 정부가 이웃한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동시에 독일로 연결되는 천연가스관인 ‘야말·유럽 파이프라인’의 공급량을 17일부터 줄였고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은 20일 기준 8% 급등했다.
유럽 각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발트 3국 가운데 하나인 리투아니아에 파병중인 독일의 크리스틴 람브레히트 국방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나토 가맹국에 지시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미 백악관은 20일 성명에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정책보좌관과 통화했다"라고 밝혔다. 설리번은 이번 통화에서 러시아와 대화 의사를 강조하면서도 상호주의를 언급하며 러시아의 행동에 따른 미국의 우려 역시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양국 대화가 유럽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의견과 완전히 조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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