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추경 공화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21 17:28

수정 2022.01.21 17:28


예산안 잉크도 마르기 전에
14조원짜리 추경안 또 나와
중구난방 편성에 예산 누더기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처럼
자영업 구제용 코로나기금을
후보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여야 모든 대선후보 간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이날 정부는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여야 모든 대선후보 간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이날 정부는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또 내놨다. 올해 첫번째, 문재인정부 들어 열번째다. 정부는 2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14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24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자영업자에 방역지원금 300만원을 지급하는 게 골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 따르면 "1월 추경은 6·25 때인 1951년 1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이례적이다. 이로써 올해 예산은 본예산보다 14조원 늘어난 621조7000원으로 증가한다. 본예산도 슈퍼인데 추경까지 더하면 초슈퍼다.

◇왜 또 추경인가

추경의 불가피성은 이해할 수 있다. 오미크론 변이 등장으로 코로나가 재차 기승을 부리자 정부는 방역의 고삐를 다시 조였다. 연말연시 대목을 앞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묵살됐다. 누가 봐도 이들은 코로나 방역의 최대 희생양이다. 기존 예산으로 부족하다면 지원금을 더 넉넉하게 풀 필요가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 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해서 부실 금융사를 살렸다. 특혜 논란이 있었지만 경제를 살리는 게 더 급하다고 봤다. 외환위기 때 금융사 부실은 회사 책임이지만, 코로나 위기에서 자영업자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잦은 추경, 뭐가 문제인가

하지만 잦은 추경은 온갖 문제를 노출시켰다. 먼저 정부, 특히 예산편성권을 쥔 기획재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새해 예산을 어떻게 짰길래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추경을 얹느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미 기재부는 엉터리 세수 예측으로 실력이 들통났다. 이 마당에 '1월 추경'까지 더해지면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위상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재정건전성 훼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정부는 11조3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한다. 이로써 올해 국가채무는 1075조원을 넘어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1%로 높아진다. 문재인정부에서 40% 저항선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올해 50%를 넘기면 60% 도달은 시간문제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라면 튼튼한 재정건전성은 늘 이를 상쇄하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금 추세라면 재정 플러스는 더이상 담보하기 힘들다.

정부는 이번 추경에 '초과 세수 기반 방역 추경'이란 이름을 붙였다. 더 걷힌 세금으로 추경을 짜니까 나랏빚은 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다만 결산이 4월에 끝나기 때문에 부득이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글쎄다. 4월 결산이 끝난다고 작년 초과세수를 국채 갚는 데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니오'에 한 표를 던진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정부의 방역지원금) 300만원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훨씬 큰 규모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지난 1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신신예식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정부의 방역지원금) 300만원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훨씬 큰 규모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지난 1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신신예식장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는 몇 번이나 짤까

들쭉날쭉 추경 편성도 더이상 봐주기 힘들다. 문 정부는 2017년 출범 첫해부터 시작해 이번까지 총 10번 추경을 짰다. 2005년 이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추경을 짠 최초의 정부다. 2020년엔 무려 4차례, 2021년엔 2차례 추경을 짰다. 아무리 코로나 긴급 상황이라고 해도 예산안을 누더기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

2022년 추경이 한 번으로 그칠 확률은 사실상 제로다. 유력 여야 후보들이 대형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설 연휴 전 25조~30조원 규모의 추경을 정부에 주문했다. 정부안이 14조원에 그치자 즉각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부채 걱정에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만 반복해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 후보 간의 갈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자린고비' 홍 부총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 후보는 21일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여야 모든 대선후보 간 긴급회동을 제안했다. 정부를 치려고 야당과 손을 잡는 모양새다.

국힘도 대형 추경에 적극적이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20일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을 만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금을 현행 1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증액하는 등 7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국힘 요구를 다 수용하면 32조~35조원이 든다. 앞서 윤석열 후보도 "(지원금) 300만원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훨씬 큰 규모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엔 "새 정부가 출범하면 100일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정부의 영업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자영업 구제용 코로나기금을 두자

차제에 우리는 대선 후보들과 국회가 이른바 '코로나기금' 설치를 적극 고려하기 바란다. 그래야 지원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지금은 중구난방이다. 추경을 짤 때마다 여야가 싸우고 정치권과 정부가 얼굴을 붉힌다. 이런 볼썽사나운 꼴을 유권자들이 언제까지 봐야 하나.

선례가 있다. 외환위기 때 정부는 공적자금을 조성해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후에 64조원, 대우사태가 터진 뒤 40조원 등 1997년 말부터 2021년 6월 말까지 총 168조7000원을 부실 금융사에 지원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발행하고 정부가 보증한 예보채가 핵심 재원으로 쓰였다. 2000년 12월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만들어 금융위원회 아래 공자위를 두고 공적자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2년 전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문재인정부는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섰다. 산업은행법을 바꿔 산은 아래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두도록 했다. 기금은 항공·해운 등 기간산업체에 산은이 자금을 지원하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부의 발빠른 대응은 칭찬을 받았다. 아뿔싸,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구제금융을 찾는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금 규모도 40조원에서 10조원으로 낮췄다. 그마저도 남아돈다.

2001년 2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현판식이 서울 명동의 뱅커스클럽 9층 위원회실에서 열렸다.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 공동위원장,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fn뉴스
2001년 2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현판식이 서울 명동의 뱅커스클럽 9층 위원회실에서 열렸다. 박승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 공동위원장,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fn뉴스


◇중구난방은 이제 그만

코로나 최대 피해자는 기업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기간산업보다 자영업자를 돕는 코로나기금이 더욱 절실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코로나기금을 조성해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순 없을까. 20여년 전 외환위기 공적자금은 예보, 2년 전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산은이 총대를 메고 정부가 뒤를 받쳤다. 코로나기금은 중소벤처기업부가 고민하면 묘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박멸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 굳이 기금을 둘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어디로 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5월 새 정부가 출범하면 또 추경을 짜겠다고 팔을 걷어붙일 게 뻔하다. 정치권과 정부가 뒤얽혀 싸우는 모습은 그만 보고 싶다.
쥐꼬리 비판을 받는 손실보상법과 별개로 코로나기금을 설치하는 방안을 대선 후보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곽인찬의 특급논설] 추경 공화국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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