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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정치에서 신의 영역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24 18:05

수정 2022.02.24 18:05

[서초포럼] 정치에서 신의 영역
과거 전근대 사회에서 정치와 무속의 결합은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근대사회에 이르러 정치는 종교와도 그리고 무속과도 분리된 맥락을 띠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재미 삼아 혹은 내심 진지하게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근대사회에서도 정치와 무속이 함께한 순간들이 적지 않다. 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점성술사에게 많이 의존했었다는 것을 1988년 뉴욕타임스지 보도로 알 수 있다.
그러한 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든 아니면 일종의 '재미'로 받아들이든 사람들은 살아가며 더 '큰' 무언가에서 위안 혹은 안정을 받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오히려 세속적인 정치라는 영역에서 이러한 영향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이것이 가벼운 위안인지 아니면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언제 신을 버리는지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인도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종교도 많고 신도 많은 인도는 해마다 전통 명절의 마지막 날에 탁 트인 차량에 신상들이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같이 모여 조상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듯이 인도의 수많은 사람은 신상이 놓인 차량 근처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즐긴다. 하지만 이는 신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행렬은 신상들을 수장하기 위한 의식으로, 사람들은 차량을 따라 물이 있는 호수나 강을 찾아가 이렇게 공들여 만든 예술 작품과도 같은 신상들을 물에 수장한다. 이를 산스크리트어로 '비사르잔'(Visarjan)이라고 하는데, 이는 신의 죽음이나 파괴가 아니라 창조가 없다는 '비창조'(pre-creation)를 의미한다. 이는 어찌 보면 일종의 동면(冬眠)으로 볼 수 있다.

상징적으로 보면 신을 항상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에서 신이 필요하고 선이 이기고 나면, 그렇게 기대었던 절대성도 보내주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다소 세련된 흥미로운 행위로 볼 수 있다. 비사르잔 의식 직후 사람들은 꽃과 향과 각양각색 가루를 뿌려 서로를 껴안고 인사하고 이웃, 친지들과 전통음식을 나누며 선이 이긴 것을 축하한다. 악이 없어졌기에 그동안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도 새롭게 미래를 설계하려 한다. 인도의 경우, 신을 믿는 것보다 신을 보내줄 때를 아는 것이 동등하게 중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오면서 이러한 정치와 종교의 전통적인 결합은 사라졌다.
과거에는 절대성과 정치의 결합이 사람들을 지탱해 주었지만, 근대사회에서는 종교 혹은 믿음이라는 복잡한 실타래는 개인의 영역으로 정리해 두었다. 물론 이러한 세속주의는 결코 사람들이 더 이상 절대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힘든 삶을 살아가며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절대성이나 무속에 관련한 스캔들은 많은 근대국가의 역사와 함께해 온 부분이지만, 우리가 확인해 봐야 할 부분은 정치적 사안 혹은 중요한 결단이 필요할 때 절대적 믿음이나 정치적 이념이 아닌 보편적인 가치와 객관적인 근거에 따른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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