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콩은 실제로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이태인 마주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경주는 바로 첫승을 거머쥔 2016년 2세 혼합 특별경주다. 돌콩은 출발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청담도끼, 지오스타 사이에서 거친 몸싸움에 휩쓸렸지만 이후 문세영 기수와 호흡을 맞추며 차분히 경주를 전개했다. 이후 직선주로에서 막판 추입에 나서며 깜짝 역전승을 이뤘는데 당시 결승선 200m 전부터 주행 기록이 1등급 말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돌콩 잠재력을 알아본 마주의 눈은 해외로 향했다. 2018년 출전한 ‘코리아컵’에서 일본 런던타운에 이어 준우승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 수준 말들과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봤고, 마침내 한국마사회 적극 지원 아래 두바이 원정길에 나섰다. 당시 주변 만류도 있고 장시간 비행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한국 경마를 대표하는 마주와 경주마라는 자긍심이 이태인 마주를 움직였다. 돌콩 도전은 놀라웠다. 3번 예선 레이스에서 6위, 3위, 1위를 기록하고 마침내 준결승격인 ‘슈퍼 새터데이(Super Saterday)’에서 3위를 기록하며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경주마 최초로 두바이 월드컵 결승전 진출
2019년 3월30일 자정이 지난 늦은 시간, 어둠이 깔린 서울경마공원에 하나둘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경주마 돌콩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고 경주 중 하나로 이른바 경마 월드컵이라 불리는 ‘두바이 월드컵’ 결승에 돌콩이 출전했다. 한국마사회가 마련한 새벽 응원 이벤트에 모인 팬만 50여명, 아직은 추운 날씨인데도 이들은 돌콩 선전을 기원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경주마에 대한 애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봄날 새벽에 펼쳐진 뜻밖의 장관이었다.
31일 새벽 1시40분, 한국 경마 최초로 두바이 월드컵 결승에 출전한 돌콩의 경주가 시작됐다. 결과는 12마리 중 11위, 결승 진출을 위해 예선-본선을 치른 혹독한 스케줄 속에 체력의 한계가 다소 아쉬웠지만 약 3개월간 해외 원정에서 보여준 선전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대한민국 경주마가 세계 최고 경주마만 출전하는 두바이 월드컵 결승전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경마에 한 획을 그은 행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돌콩은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일취월장한 레이스를 선보였다. 부산광역시장배와 KRA컵 클래식에서 불꽃같은 추입으로 우승을 거머쥐어 세계 최고 경주마들과 겨뤘던 클래스를 실력으로 입증했다. 당시 막강한 라이벌이던 문학치프와 청담도끼와 승부에서도 우위를 점할 정도로 적수가 없었다.
◇마주-조교사 극진한 보살핌으로 3년공백 극복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두바이 월드컵 출전과 연이은 국내 대회 석권으로 2019년을 완벽히 마무리해 가던 돌콩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해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랑프리 경주를 준비하던 11월22일 왼쪽 앞다리 종자골 골절이란 큰 부상을 당했고 이후 경주로를 떠났다. 기약 없는 재활시간이 계속됐다. 수술과 재활치료, 게다가 다른 부상까지 겹치며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경주마로서 끝났다는 세간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이태인 마주 부부의 극진한 보살핌과 20조 배대선 조교사의 세심한 관리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3년 만에 다시 돌콩이 코리아컵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경마 팬과 만나게 됐다.
이태인 마주 부부는 아침마다 당근과 콩을 갈아 만든 ‘돌콩 주스’로 건강을 챙긴다고 한다. 단순한 건강관리 차원이 아닌 돌콩에게 간식으로 줄 당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마주 보살핌은 세세하다 못해 절절하다. 이태인 마주는 “돌콩은 내게 마주로서 큰 명예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운명처럼 만나 희망과 보람을 준 자식과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에 꼭 회복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3년 재활기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돌콩 코리아컵 복귀…또다른 드라마 작성 ‘초읽기’
국제 경주 코리아컵 출전마 중 가장 나이가 많은 8세에 1065일 만에 경주 출전, 거기에 코리아컵은 2018, 2019 그리고 2022년까지 벌써 세 번째 도전이다. 코리아컵 3번 도전은 돌콩이 처음이다. 오는 4일 돌콩은 영국-일본-홍콩의 우수 경주마, 현재 국내 최강자인 위너스맨-라온더파이터-행복왕자 등과 진검승부를 펼친다.
복귀전을 준비하는 이태인 마주 소감은 간결했다. “이제 다시 경주로에 나선 돌콩이 경주마로서 오래 활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 물론 승자와 패자가 나오겠지만 돌콩의 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지다. 이제 부상을 극복하고 출발선 앞에 선 돌콩의 위대한 도전은 한국경마 100년을 맞은 2022년, 코로나19를 넘어 3년 만에 개최되는 코리아컵이 주는 또 하나의 감동이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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