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를 졸업할 것. 자력으로 해외 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삼성의 '롤모델'로 알려진 스웨덴 발렌베리가(家)의 후계자 조건이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삼성 지배구조 개편 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발렌베리가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스웨덴의 삼성', 5대째 가족 세습... 수익 80%는 사회공헌
지난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창업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이 모태인 발렌베리 그룹은 현재 스웨덴 국내 총생산(GDP)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기업이다. 스토라엔소(세계 최대 제지 회사), 일렉트로룩스(세계 2위 가전 회사), SKF(세계 최대 베어링 기업),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스칸디나비아항공, 나스닥(세계 2위 거래소) 등 100여개의 유수 기업들이 발렌베리 그룹에 속해있다.
발렌베리가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각 자회사의 경영권을 독립적으로 일임하고, 지주회사 인베스터AB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또 지주사 인베스터AB는 발렌베리 가문이 운영하는 3개의 재단이 지배한다. 수익 80%는 과학·교육 등에 대한 투자로 환원하고 20%는 재단 내부에 투자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는 발렌베리 가문이 1938년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 당시 정부로부터 차등의결권을 보장받는 대신 스웨덴 내 고용을 보장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로 약속의 산물이다. 차등의결권은 '1주=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 창업자가 보유한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하며 발렌베리 가문의 5대 세습을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발렌베리는 인베스터AB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야콥과 SEB 회장을 맡고 있는 마르쿠스 '투톱' 체제로 그룹을 이원 지배하고 있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 '발렌베리 모델'이 실마리 될까
삼성은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발주한 연구 용역 보고서를 올해 상반기 중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2기 준법위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실현'을 3대 중심 추진 과제 중 하나로 꼽은 바 있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20년 5월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오너 체제에서 장기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삼성그룹이 '롤모델' 발렌베리그룹처럼 재단을 활용한 지배구조개편을 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은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또는 출자총액에 5% 미만에 한해서만 세금이 면제된다. 5% 이상에 대해서는 최대 60%의 증여세를 내야한다. 또 발렌베리 산하 재단은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인베스터AB 지분 23.3%만으로도 5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는 아직 차등의결권이 도입되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한편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고차방정식의 방향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소위 '삼성생명법'의 통과 여부가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그룹 소유 구조는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아래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까지 이어져 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17.97%)을 비롯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1.31%를 보유 중이며, 이 지분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국회에서 발의된 보험 계열사 주식 보유를 총 자산의 3%로 제한하는 보험업법(소위 삼성생명법) 개정안은 보험사의 주식·채권 보유 금액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통과 가능성은 적지만 해당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약 20조원가량의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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