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총리의 퇴임사(?) 같은 2023년 정부업무보고
2023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중국 리커창 총리의 정부업무보고는 밋밋했다. 47분간 읽어 내려간 리커창 총리의 업무보고에서 전체분량의 68%는 지난 5년간의 회고였다. 11%는 2022년 실적에 할애했고, 모두가 관심 갖는 2023년 경제문제는 겨우 12%정도의 분량에 그쳤다.
구체적인 수치목표를 명시한 거시경제지표는 단 4가지로 수치목표 뒤에는 모두 '내외(左右)'라는 묘한 접미어가 따라 붙었다. GDP목표 5%내외(左右), 신규취업자수 1200만명 내외(左右), 도시조사실업율 5.5% 내외(左右), 소비자물가지수 3% 내외(左右) 이런 식이고 나머지 모든 목표는 명확한 수치대신 추상적인 단어 나열에 그쳤다.
<정부업무보고에 나타난 GDP목표의 접미사>
자료: 중국정부망 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중국이 6%대의 성장률 목표를 내 건 것은 지난 2017년부터인데 6%면 그냥 6%라고 쓰면 될 것을 2017~2018년에는 6%좌우(左右)라고 썼고, 2019년에는 6~6.5%구간(区间)을 제시했고, 2020년에는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2021년에는 새로운 표현인 6%이상(以上)이라고 발표했고 2022년에는 5.5% 좌우(左右)라고 썼다.
2015년 이전에 중국정부는 성장률 목표수치를 8%, 7%, 10% 등으로 수치를 정확하게 못 박았다. 그러나 2016년부터 정부 목표치 뒤에는 좌우(左右), 구간(区间), 이상(以上) 이라고 하는 접미사가 붙기 시작했다. 도대체 좌우(左右), 구간(区间), 이상(以上)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는 중국경제가 개방경제가 되면서 대내·외변수의 영향력이 커져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규모 폐쇄경제일때는 정부가 계획하는 데로 일사불란하게 이룰 수 있었지만 세계 2위의 경제권으로, 그리고 미국GDP의 70%대를 넘어서는 거대 경제권이 된 지금 이젠 중국 정부의 뜻대로 경제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의 간접적인 고백이다
자료: 중국정부망 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성장, 안정, 소비가 2023년 경제정책의 중점
이번 2023년 정부 업무보고는 분석하기 어렵다. 단 4개의 수치 외에는 모두 추상적인 단어로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업무 보고서에 소비만 있고 수출과 첨단기술은 없었다. 그간 중국은 반드시 수출성과와 첨단기술 성과를 자랑했지만 2022년에 역대 최대의 무역흑자를 냈고, 많은 과학기술성과를 냈지만 이를 숨겼다. 미국과 무역전쟁, 기술전쟁을 하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고 몸조심을 하는 것이다
중국은 표의문자의 나라이고 숫자로 표시하지 않더라도 정말 정부가 집중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행간의 의미로 표시한다. 표음문자에 익숙한 서방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냐고 할 수 있지만 표의문자의 의미를 아는 중국인민들은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
바로 키워드의 반복이다. 어떤 키워드를 가장 많이 언급했느냐로도 알 수 있고 전년대비 빈도수의 증감을 보면 정부정책의 중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2023년 정부업무보고의 키워드 빈도수로는 1)개혁, 2)성장, 3)안정, 4)혁신, 5)취업을 얘기했지만 중국의 정부보고는 일정한 형식이 있고 그 포맷에 맞춰 기본적으로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절대 빈도 수 보다는 전년대비 빈도 수의 차이를 보면 정부의 중점과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료: 중국정부망 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2023년의 주요 키워드 중 2022년보다 빈도수 비중이 높은 것을 보면 1)성장 2)안정 3) 소비, 4)식량, 5)안전이다. 개혁이나 과학기술, 취업 이런 키워드는 오히려 2022년보다 빈도수 비중이 줄었다. 중국의 정부업무 보고로 보면 첫째, 역대 최저 성장률 목표를 냈지만 실제로는 중국은 경제성장에 목을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장이 되면 고용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투자심리 안정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3년간의 코로나로 민심이반이 심각하고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싸늘하다. 그래서 사회안정, 민생안정을 두번째로 내건 것이고 결국 경제든 투자든 소비든 모두 심리이기 때문에 싸늘해진 인민의 심리, 기업의 심리, 외국인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서방은 1인집권체제로 마오시대의 폐쇄경제로 회귀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이번 정부업무 보고에도 대외개방과 외자유치를 중요정책으로 내세웠다. 탈중국하려는 심리를 안정시키고 미국의 봉쇄에 대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소비중심 성장이다. 이미 소비가 경제의 주력이 된 마당에 투자심리 안정다음은 소비확대이고 내수시장 확대는 미국과의 무역전쟁, 기술전쟁에서 중국을 보호하고 살리는 유일한 방안이다. 미국의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을 탐낸 서방의 배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미 유럽의 맹주 독일이 중국의 유혹에 응답했고, 중동의 맹주 사우디도 중국과 손잡기 시작했다.
넷째, 미국과의 전쟁 준비다. 20대 당대회에서 중국은 국가안전을 최우선으로 선언하고 식량, 에너지, 첨단산업공급망 3개를 국가안전의 핵심으로 꼽았다. 2023년 중점사업에 식량과 안전이 강조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섯째, 지난 3년간 투기의 주범, 빈부격차의 주범으로 몰려 악의 축처럼 비난 받아왔던 부동산이 이젠 경기를 살리는 효자로 등장했다. 빈도수 증가 7번, 8번으로 부동산과 주택이 등장했다. 내수소비의 중심에 있는 부동산을 살리면 철강, 시멘트 건자재가 살고 건축물이 완공되면 가구, 가전, 자동차의 소비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내수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에 목을 건 중국 부동산을 부양하지 않고는 목표달성은 요원하다.
그리고 3년간의 코로나로 14억명의 인민들은 잦은 봉쇄로 모든 생활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수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간 규제일변도였던 인터넷 플랫폼산업을 재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부업무 보고에 플랫폼산업의 활성화 조치가 등장한 것이다
역대 최저인 5.0% 성장률 목표의 속내는?
국유기업의 비중이 GDP의 63%를 차지하는 공유경제사회인 중국의 GDP는 서방자본주의국가의 GDP와는 달리 해석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유기업은 이익극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고용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의 GDP는 고용지표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어느 나라든 대졸 실업자가 많아지면 사회가 불안해 진다. GDP 1%당 고용유발계수가 얼마인 가를 감안해 GDP목표를 곱하면 연간 신규고용자수가 나오고 이를 대졸자와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2023년 중국에서 배출되는 대졸자수는 1158만명이다. 코로나19 이전 정상상태였던 2019년 GDP 1%당 고용유발계수는 222만명이었고, 여기에 5%를 곱하면 1110만명이다. 1200만명을 고용하겠다면 최하 5.4%의 성장을 하겠다는 의미다.
자료: 중국국가통계국 자료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그래서 중국의 2023년 GDP 목표 5%는 달성하겠다는 목표의 최대치가 아니라 사회안정을 위해 최악의 경우라도 절대 이 수치 이하로는 내려가서는 안된다는 마지노선이다. 2023년의 거시경제 목표를 보면 전년수준과 낮거나 비슷한 수준인데 반해 고용목표만 100만명이 높아진 것에 답이 있다.
<2023년 주요거시경제지표 목표>
2019년 이전까지 중국정부는 정부 GDP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정부가 한다면 반드시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2020년 코로나 발생이후 3년간 정부 예측치는 모두 범위를 벗어나 소위 정부의 신뢰성이 추락하는 '타키투스 함정'에 빠졌다.
2023년에 중국은 코로나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 목표치를 엉터리로 예측하면 진짜 신뢰의 위기가 온다. 그래서 2023년에는 가장 보수적인 목표를 잡고 실적은 초과 달성해 추락한 정부 신뢰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2023년의 GDP실적치는 목표치를 상회하는 5.5%이상의 수준으로 나올 것으로 보이고 역대 최저치 5%는 정부의 숨은 의도가 있는 목표로 판단된다.
중국의 내수확대의 6가지 전략
이번 전인대에서 2022년12월의 경제공작회의에서 언급하지 않은 새로운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2023년 세계경제가 모두 하강으로 들어가는 상황에 중국은 “경제안정(稳定)을 최우선으로 삼고 수출에 대한 기대는 접고 대신 내수확대에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내수소비의 GDP기여도가 65%에 달하는 중국경제구조상 5%이상의 성장을 하려면 내수확대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3년에 내수확대를 통한 5%이상 달성을 하는데 중점 정책은 6가지다.
첫째, 소비확대를 최우선으로 하고 이를 위해 주민소득향상과 대중소비 안정화 그리고 생활서비스소비의 회복이다. 둘째, 정부의 14.5계획에 따른 중대프로젝트중심으로 투자확대를 통해 민간투자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방정부 특별채는 3.8조위안을 발행해 2022년보다 소폭 늘려 투자회복을 지원한다
셋째 부동산은 시장안정화와 기업의 부도 리스크를 막는데 중점을 둔다. 청년 등의 주택수요문제를 지원하고 강화한다. 넷째,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에너지자원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고 디지털과 물류체계를 지원하고 플랫폼 경제를 지원한다 다섯째, 국유기업개혁과 경쟁력을 제고하고 민영기업의 산업재산권과 민간기업가의 권익을 보장해 시장의 신뢰성을 제고한다 여섯째, 녹색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환경, SOC, 에너지, 자원 재활용분야를 적극 지원한다.
중국의 5%성장을 피크 차이나(China Peak)로 보는 것은 넌센스
중국의 역대 최저인 2023년 성장률 목표 5%를 두고 말이 많다. 중국의 성장은 끝났고(china peak) 중국은 이제 추락하는 길만 남았다는 기사가 넘쳐난다. 그러나 서방언론의 중국의 절대성장율 하락을 두고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넌센스다.
첫째, 중국의 성장률은 세계평균이나 미국, 일본, 한국과의 상대 성장률로 봐야 한다. 2000년이후 고부채와 고령화 빈부격차 등등의 이유로 중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성장률은 다 하락했다.
2023년 IMF 1월 예측치 기준으로 보면 중국경제 전망을 보면 전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고성장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리고 2023년 GDP가 2022년보다 높은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위기의 나라 중국이 미국의 3.7배, 한국의 3.0배, 일본의 2.9배, 세계평균의 1.8배를 성장하는 데 이런 중국이 끝났으면 다른 나라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자료: IMF, 2023.1
둘째, 중국의 GDP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절대 성장률의 감속을 두고 성장은 끝났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다. 초등학교 다닐 때 매년 8cm키가 자라던 친구가 중학교 들어가서 6cm, 고등학교 들어가서 5cm씩 키가 자라면 이 친구는 끝났고 이젠 망했다고 하는 것과 같다.
IMF의 2023년 1월 세계경제예측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8%성장했던 2000년의 미국대비 GDP규모는 12%였는데 2023년 미국대비 GDP규모는 83%수준이다. 중국이 8%대 성장했던 2000년의 GDP규모와 비교하면 5% 성장을 목표로 하는 2023년 GDP규모는 2000년의 18배나 된다.
<중국과 미국의 성장률과 경제규모 비교>
자료: IMF Country GDP Database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가장 큰 우리 한국은 그간 중국의 무례와 오만함에 정서적으로는 반중정서가 클 수 밖에 없지만 정말 중국이 끝났다면 GDP에서 수출비중이 높고 대중의존도가 가장 높은 한국이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평균성장의 1.8배 한국성장의 3배를 성장하는 나라를 두고 끝났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서방 정치의 레토릭에 같이 맞장구만 치고 있으면 안된다. 오히려 미국경제의 83%나 되는 거대 경제권이 무엇을 결핍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보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 답이다. 돈에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 경제는 감정 섞지 말고 냉정하게 보고 실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전병서 소장 주요 이력
△푸단대 박사/칭화대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Analyst 17년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