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종목▶
'길복순' 속 설경구 대사 "(엄마?) 잘해. 일도 좋아하고"
[파이낸셜뉴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바꿔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죠.”
드라마 ‘일타스캔들’로 과거 ‘로맨스 여왕’의 명성을 되찾은 전도연을 드라마 종영 후 만났다. 전도연은 자신이 연기한 국가대표 출신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 캐릭터가 지금보다 “훨씬 더 텐션이 높은 캐릭터였다”고 말했다.
까칠한 일타강사 최치열과 남행선은 탁구경기를 하듯 서로 대사를 빠르게 주고받으며 티격태격하다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남녀 캐릭터로 설정됐던 것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다. 다만 느낌이 달라졌을뿐.
“나는 그렇게 텐션이 높은 사람이 아니에요. 티키타카도 자신없고. 완벽하게 나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어려워요. 그래서 감독님과 작가님께 두분이 애초 생각한 남행선을 내가 잘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원하시면) 캐스팅을 바꾸셔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바꾸라고 강력 요청했죠."
작가가 구상한 남행선은 또 억척스런 아줌마였다. 상황만 보면 남행선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인데,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집안의 가장이 된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아 경미한 아스퍼그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남동생의 보호자이자 무책임한 언니가 두고 간 조카의 엄마로 산다.
그런 남행선은 전도연이라는 필터를 거쳐 '내강외유'의 캐릭터로 거듭났다. 유난히 꽃무늬가 많았던 의상과 활동성을 가미한 청바지 패션은 남행선의 실용성과 여성성을 잘 드러냈다.
전도연은 “작가님이 생각한 억척스런 아줌마 캐릭터가 저로 인해 조금 희석됐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 말씀이 뇌리에 남아서 감독님께 초반에 내가 잘하는지 계속 확인했다”고 돌이켰다.
■ "내 웃는 모습 참 예쁘더라고요"
영화 '접속'으로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한 전도연은 영화 '해피 엔드'(1999), '밀양'(2007), '집으로 가는 길'(2013), '무뢰한'(2015), '생일'(2019), 드라마 '사랑할 때까지'(1996), '프라하의 연인'(2005), '굿 와이프'(2016), '인간실격'(2021) 등에서 호연을 펼쳐왔다. '밀양'으로 한국배우 최초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밀양'이후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주로하면서 전도연의 싱그러운 웃음이 잊혔지만, 눈과 콧등을 '찡긋'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전도연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전도연은 이번 드라마에서 예의 사랑스런 웃음을 맘껏 발산했다.
전도연 역시 “내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쁘구나 싶었다”며 “스스로 웃는 모습을 볼 일이 없잖나. 내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작품을 하는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행선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포기하고 차선의 선택을 최선처럼 살아가는게 무척 멋있었죠. 응원해주고 싶었고, 사람들도 행선의 그런 모습을 발견해주길 바랐죠.
10대 딸을 둔 엄마지만 여전히 싱그러움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나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런 생각을 늘 했는데 그런 마음이 행선을 통해 보여진 것일까요? 사실 촬영 초반에는 몸이 안좋아서 모니터를 하면서 제 얼굴을 보는 게 불편했어요. 내 얼굴이 피곤하고 힘들어보였어요. 그런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면, 촬영을 할 수 없겠더라고요.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기로 했어요.”
앞서 배우 문소리는 영화제 수상 배우라 칭송받지만 정작 캐스팅 제의는 잘 안들어온다며 직접 영화 연출에 나서기도 했다.
전도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내면서 기다리는 전략을 취한듯 했다. 그는 자신을 “수동적인 배우였다”고 표현했다. 좀 더 다양한 작품, 배역에 대한 갈증이 있었지만, 자신이 먼저 누군가에게 손내민 적은 없었단다.
“솔직히 작품이 없으면 밥 먹자 이런 말도 하기 쉽지 않잖아요. 특히나 젊은 감독들에게 나는 어려운 선배고. 그렇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그들이 내게 다가올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뭔가 변하길 바라면, 뭔가 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됐죠.”
특히 연기를 계속하려면 젊은 감독들과 접점이 필요했을 것이다. 배우 설경구가 '지천명 아이돌'로 거듭난게 자극이 됐던 걸까?
"제 작품 선택 기준은 이야기에요. 우연히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찾았는데 제작자도 감독도 없었어요. 그 아이템을 쓸 감독님이 필요했죠. 그래서 (설)경구 오빠의 소개로 변성현 감독을 만났어요. 그런데 본인이 직접 쓴 글이 아니면 연출 안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20)을 본 변성현 감독이 “배우 전도연과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락이 왔고, 그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으로 발전했다.
“우리집에 여러 번 와서 저를 관찰했어요. 딸과 있는 모습도 봤고요. 배우와 킬러라는 직업만 다를뿐 전도연의 모습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사실 저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해요. 수동적인 편이죠. 근데 어떤 상황에 주어지면 두려움은 없어요. 승부욕도 있죠.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아요. ‘길복순’은 액션도 그렇고, 한계에 부딪힐 수 있잖나요. 그런데 무리해서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죠.”
‘길복순’에서 길복순의 10대 딸은 엄마의 직장 동료라고 밝힌 남자에게 묻는다. "회사에서 우리 엄마는 어때요?" 설경구가 연기한 그 남자는 말한다. “잘해. 일도 좋아하고.” 그야말로 명불허전 연기로 자신의 이름을 빛내온 전도연을 위한 대사다. “잘해, 연기도 좋아하고”라는 의미와 다름없다.
■ "내 연기는 ‘밀양’ 전후로 나뉩니다."
올해 '길복순'과 '일타스캔들'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분위기라고 하자 그는 무리하게 그런 것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지만 "전도연의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갈증은 있었다"고 했다.
"저는 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부족했어요. 저는 저를 어떤 틀에 가두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저를 가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 틀을 깨거나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기보다 제가 할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제 필모그래피에 만족해요. 다만,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생기길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밀양’ 전후로 나눴다. “‘밀양’ 전에는 감독은 답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독을 비롯해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연기, 감정을 연기했어요. 그게 맞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밀양’을 찍을 당시 이창동 감독이 네가 느끼는 만큼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끝나고 점차 알게된 것 같아요.”
“내가 느낀 것을 연기하라고? 그렇다면 답은 내 안에 있는 거잖아요. 내가 정답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럼 계속 내 연기를 의심해야 하죠. 이게 그 인물이 느끼는 것인지, 내가 느끼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죠.”
대중의 기대에 부담감을 느끼냐는 물음에는 “기대감은 좋은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기대만큼 부담도 되나, 스스로 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저를 가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무엇을 하더라도 '나'스럽게,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더 많이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더 많은 기대감도 감당할 수 있어요. 오히려 (사람들의) 기대감이 없는 것이 좌절입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