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위법" vs "통치행위"…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 놓고 시끌 [법조 인사이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19 18:12

수정 2023.03.19 18:12

피해자 측 "당사자 동의 없인 안돼
日기업 대신 韓기업 변제 인정못해"
정부 측 "대통령 통치행위에 해당
사법 심사 하더라도 집행은 곤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지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이 발표된 지난 6일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피해당사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안을 두고 법적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최종 해법안으로 발표했으나, 피해자들이 이를 거부하고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추심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 측과 정치권 일각에서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침이 민·형사상 위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이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추심금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지다.
원고로는 양금덕(93) 할머니, 사망한 피해자 1인의 유족 등 7명이다.

■피해자측, "우리 동의 없이는 위법"

정부는 지난 6일 발표한 제3자 변제안엔 미쓰비시중공업이 빠져있다. 국내 기업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지원을 출연해 피해자들에게 대법원 판결금을 변제토록 했다. 피해자 측은 정부안이 지난 2018년 일본기업에 대한 국내 자산 가압류를 결정한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3자 변제를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들은 민법에 따라 채무를 제3자가 변제하는 것은 가능하나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법 제469조는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으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때는 변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정부안을 거부하면 법원에 배상금을 맡기도록 공탁 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지만, 법원이 효력을 인정해야만 가능하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고들이 제3자 채무 변제에 동의하지 않으면 채권액을 공탁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채무를 부정하고 있는 미쓰비시 입장에서도 제3자 변제를 동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임으로 당사자 모두가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배임죄 걸리면 어쩌나"

법조계에선 기업들이 배임죄에 걸릴 가능성도 보고 있다. 기부금 출연에 참가하는 기업 입장에서 수십억원의 돈을 출연하는 것이 경제적 손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쓰비시가 갚아야 할 돈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민간 기업이 대납해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 회사 주주들이 경영진들을 배임죄로 고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출연금을 낸 포스코의 경우 과거에 이미 출연하겠다는 약정서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2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재철과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에 대한 청구권을 받아들이자 지원재단에 100억 원의 기부금을 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포스코는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중 하나다.

반면 통상적으로 기업들이 모든 기부를 할 때마다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업무상 배임이 적용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기업들이 매년 수십억원 규모의 기부를 하는 경우 매번 주주총회를 열어 결의를 거치지는 않는다"며 "정치적·도덕적으로는 문제를 삼을 수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도 위법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야권에서는 "구상권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다면 강요죄, 직권남용죄도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통치행위, 사법판단 안할수도"

제3자 변제에 대해 문제 소지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날을 세운다. 구상권을 포기한 정당한 이유가 입증되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해당할 경우는 사법적 판단 자체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치행위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작용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기 부적합할 뿐 아니라 사법적 판결이 있는 경우에도 그 집행이 곤란한 성질의 행위를 말한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박정희 정부 시절 내려진 긴급조치 1호에 대해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강제징용 배상이 '법정채권'에 해당해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법정채권은 △사무관리 △부당이득 △불법행위 등이 원인이 돼 발생한 채권관계를 의미하는데, 피해자 측이 얻은 채권은 일본 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받아 얻게 된 것으로 법정채권에 해당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정부 측 법률 자문을 맡은 최우균 변호사는 지난 1월 12일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이 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에 의해 원고가 채권을 얻게 된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사적자치 원칙의 적용 여지가 없다"며 "제3자 변제를 원하지 않아도 변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유력한 학설"이라고 말했다.

koreanbae@fnnews.com 배한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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