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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故 이우영 작가가 남긴 숙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26 19:55

수정 2023.03.26 21:53

검정고무신(자료사진)/뉴스1 ⓒ News1 /사진=뉴스1
검정고무신(자료사진)/뉴스1 ⓒ News1 /사진=뉴스1


"사람이 죽어야 이슈가 될까." 자신의 캐릭터를 사업화한 콘텐츠 업체 형설앤과 저작권 분쟁을 벌이던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51)가 생전에 억울함을 호소하다 12일 세상을 등졌다.

이영일(글)·이우영(그림) 만화 '검정고무신'은 1992~2006년 '소년챔프'에 연재된 인기 만화였다. 고인은 군복무 중 자신을 대신한 동생 이우진과 이 작품에 청춘을 바쳤다. 동명의 TV만화는 4기까지 제작됐고, 지난 2년간 두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개봉했다. 이 작가는 2020년 '추억의 검정고무신' 개봉 당시 "원저작자에게 (영화화) 통보조차 안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형설앤 측은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맞섰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07년 형설앤과 포괄적·무제한·무기한으로 저작물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법 지식이 부족한 창작자를 상대로 불공정 계약이 만연해왔는데, '검정고무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창작자가) 인생을 걸고 만들어낸 것에 숟가락만 올려놓고 제 것인 양하는 사람들이 콘텐츠업계에 많다"며 "'검정고무신'은 악질적 사례"라고 했다.

지난 15년간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한 항목이 어림잡아 70개가 넘는데, 고인이 수령한 금액은 누적 1200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중 형설앤이 지난해 롯데마트와 한 캐릭터 사업으로 고인이 얻은 수익은 '깜놀' 수준이다. 고인은 법정 진술서에 "5만6700원이라는 금액이 찍힌 정산 명세서를 보면서 실성한 사람마냥 웃었다"고 썼다.

앞서 형설앤은 고인 모친이 운영하는 체험농장에서 TV만화 '검정고무신'을 틀었다고 모친을 형사고소했다. 2019년엔 2억8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자신들이 '검정고무신' 저작물에 대한 사업화 권리를 모두 갖고 있는데, 이우영, 이우진 형제가 허가 없이 '검정고무신' 창작활동을 했다는 게 이유였다.
형설앤 장모 대표는 작가들을 설득해 '검정고무신' 캐릭터들의 공동저작자로도 이름도 올렸다는 게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우리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던 고인의 호소는 이제 남은 자들의 숙제가 됐다.
이우영법이 제정돼 고인의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바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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