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한동하의 본초여담] 자신만 복 받은 복의(福醫)보다 차라리 가난한 OO가 낫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08 06:00

수정 2023.04.08 10:33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중국 원나라때 나천익(羅天益)이 편찬한 위생보감(衛生寶鑑)에 ‘복의치치(福醫治病)’와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 원나라때 나천익(羅天益)이 편찬한 위생보감(衛生寶鑑)에 ‘복의치치(福醫治病)’와 관련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먼 옛날 가을날, 한 대감집의 둘째 아들이 병을 앓았다. 그는 올해 나이가 27세로 한창 왕성한 체력을 지녀야 할 나이임에도 팔다리가 노곤해지는 병이 생긴 것이다. 항상 갈증이 있고 가슴이 답답했으며 열도 나고 식은땀을 흘리며 숨이 짧았다. 식욕도 없어지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데 가래도 많이 올라왔다.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니 흉격이 답답해지기 일쑤였다. 변비도 심했다.

몸은 점차 말라가서 파리하게 야위었다. 병이 든 이후 1년이 지났고 영험(靈驗)하다는 의원으로 몇 번이나 바꿔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가족들은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중 대감의 한 친척이 “명철(名哲)한 의사는 복(福)된 의사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의원이 있는데, 그는 비록 의서를 많이 읽지 못했고 맥후(脈候)에 밝지 못하지만 환자들을 많이 봐서 여러 증을 경험했으며, 환자가 하도 많아서 사람들은 그를 복의(福醫)라고 부른답니다. 속담에 ‘네가 아무리 왕숙화를 읽어봤자, 내가 병증을 많이 본 것만 못하다’라고 하지 않던가요?”라고 하였다.

왕숙화(王叔和)는 당대 세상에 이름을 날린 명의 중 한 명이다. 그 말인즉슨 제아무리 훌륭한 의사의 방서를 많이 읽는 것보다 차라리 환자를 많이 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낫다는 속담이었다. 대감이 생각하기에도 그럴만 했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 그 의원을 모셔 오도록 했다.

의원이 도착을 해서 진맥을 해 본 후 “이 병은 제가 지겹도록 잘 아니 치료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대감이 물었다. “맥은 어떻소? 어떤 병증이고 원인은 뭐고 또 병명은 무엇입니까?”하자, 의원은 “내 그것을 잘 모르겠으나 내가 전에 많이 봤던 환자와 병증이 같으니 그리 치료해 보겠소.”라는 대답을 했다.

대감은 이런 병증의 치료 경험이 많다니 다행스러워 하며 치료를 맡겼다. 의원은 아들을 엎드려 놓고 등에 있는 양쪽 폐수(肺兪)에 각각 뜸을 7장씩 뜨고, 견음지실환(蠲飲枳實丸)으로 담을 삭이고 체한 것을 내리고자 했다. 견음지실환은 지금은 알려지지 않는 처방이지만 아마도 견음(蠲飲)이란 처방명을 보면 담음(痰飮)을 삭히고자 함이고 지실(枳實)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체기나 심하비(心下痞), 변폐(便閉) 등을 치료하는 공격적인 처방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들은 환약을 몇 번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대변이 묽은 설사로 쉴새 없이 나왔다. 또한 배가 아프고 음식은 아예 입에도 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환약에는 대황과 같은 독한 사하제(瀉下劑, 설사약)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은 대감에게 신음을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아버님, 제 몸이 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라고 했다.

대감이 의원에게 “증상이 차도가 없고 아들놈이 더 기운이 없이 힘들어 하고 있으니 어찌 하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제가 전에도 이런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러다가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있었으니 약을 끝까지 잘 복용하게 하시지요.”라고 했다.

대감은 경험이 많다는 의원의 말인지라 안심을 하고 환약을 계속 복용시켰다. 그러나 아들은 결국 명(命)을 다하고 말았다.

대감은 의원에게 따져물었지만 의원은 “전에는 이렇게 해서 좋아졌는데,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 약이 듣지 않은 연유를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시간을 흘러 겨울이 되었다. 대감에게는 어려서부터 막역한 사이의 의원이 한 명 있었다. 그 의원은 의서를 많이 읽어 의도(醫道)에 정통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항상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니 남들은 그 의원의 의술이 깊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할 뿐이었다. 약방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약방이 없는 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의술을 행했다. 그러니 대감은 친구인 의원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아들의 치료를 맡기지도 못한 것이었다.

겨울 어느 날, 친구 의원이 대감집을 찾게 되었다. 그때서야 대감은 아들놈이 병고(病苦)에 시달리다가 여러 의원들이 치료를 해 봤지만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의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아들놈 생전에 진맥을 못해봤으니 장담은 못하겠네만은, 자네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아들은 아마도 노채병(勞瘵病, 결핵의 일종)이나 폐위증(肺痿證, 만성 소모성 폐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 그런 병증에는 몸을 보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강한 약을 써서 도리어 병세를 악화시키고 환자의 기력을 소모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이네. <내경>에도 형기(形氣)가 부족하고 병기(病氣)가 부족하면 이는 음양이 모두 부족한 것이니 마땅히 급하게 보(補)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때 사(瀉)한다면 거듭 부족하게 된다고 했네. 보(補)해야 할 때 잘못 사(瀉)하게 되면 음양이 모두 고갈되고 기혈이 소진하여 오장이 공허해지고 근골은 마르게 되니 노인은 절명하고 장년이라고 회복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네.” 대감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친구 의원은 이어서 “아들은 병을 오래 앓아 파리하고 수척했으니 바로 형(形)이 부족한 것이고, 숨이 짧고 급했으니 바로 기(氣)가 부족한 것이며, 번조가 발작할 때 눕기를 좋아하고 사지가 노곤하고 말하기를 귀찮아하니 바로 기혈(氣血)이 모두 부족한 것이었네. 보(補)하더라도 오직 충분하지 못할까 혹은 보법을 행함이 늦을까를 두려워할 것인데, 도리어 약간 독이 있는 약으로 사(瀉)하였다면, 허(虛)한 것이 더 허(虛)하게 되고 손상된 것이 더욱 손상되었으니 어찌 죽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이 말을 들은 대감은 안타까움에 탄식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허(虛)을 허(虛)하게 한다’는 것은 허허실실(虛虛實實)로, 허(虛)함은 보(補)해야 하는데 오히려 허(虛)하게 하고, 실(實)함은 사(瀉)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실(實)하게 하는 것은 치료에 있어 큰 패착에 빠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허허(虛虛)란 위가 약해 설사를 한다면 인삼, 백출 등으로 보해야 하는데 대황, 망초 등으로 더욱 설사를 시키는 것이고, 실실(實實)이란 고열과 인후통에는 금은화, 연교 등으로 열을 쳐야 하는데, 여기에 인삼이나 홍삼을 써서 더욱 열을 조장하는 것과 같다.

친구 의원이 물었다. “자네는 어쩌자고 방서(方書)를 읽어 본 적도 없는 자에게 아들의 치료를 맡긴 것인가?”
그러나 대감은 “그 자가 아들놈의 병증과 같은 환자를 치료해 본적이 많다기에 믿었을 뿐이네. 그 의원을 사람들이 복의(福醫)라고도 불렀다고 했네.”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손진인이라 옛 명의가 말하기를 무릇 대의(大醫)가 되려면 반드시 기존의 의서와 의론을 꿰뚫고 이어서 스스로 십이경맥(十二經脈), 삼부구후(三部九候), 오장육부(五臟六腑), 표리공혈(表裏孔穴), 본초약성(本草藥性)을 익히고 장중경(張仲景)과 왕숙화(王叔和)의 여러 경방(經方)을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했네. 항간에 돌팔이 의원들이 ‘제 아무리 왕숙화를 읽어봤자, 병증을 많이 본 것만 못하다’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지만, 그런 소문은 게을러서 의서를 읽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대는 것에 불과한 것이네.”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친구 아들을 잃게 된 것이 마치 자신 때문인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여 밖으로 나왔다. ‘의학에 정밀하지 못하고 맥에 통달하지 못하며 여러 경방과 본초를 보지 않았는데도, 운 좋게 환자가 나았다고 해서 복의(福醫)라 부르며 환자들이 마침내 용렬한 자의 손에 목숨을 맡기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아! 의사의 복이란 그 자신에게나 복이 있다는 것이지 어찌 환자의 복이고 그의 복이 어찌 환자의 병환을 없앨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이 이치를 알지 못해 생명을 잃는 데에 이르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하니, 미혹됨이 심하구나. 슬프도다!’라고 생각하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약방에 환자가 많으면 실력있는 의원인가 보다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방에 환자가 북적인다고 해서 실력 있는 의원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일부 의원들은 거간꾼을 시켜서 환자를 모으기도 하고, 화려한 언변과 과장으로 자신의 의술을 부풀리며, 상술로 환자를 현혹해서 부를 축적하는 데만 골몰하기도 한다. 옛말에 덕(德)은 복(福)의 터전이라 했거늘, 자신만 복 받은 복의(福醫)보다 차라리 가난한 덕의(德醫)가 낫다.

** 제목의 ○○는 덕의(德醫)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 衛生寶鑑. 福醫治病. 丙辰秋, 楚丘縣賈君次子二十七歲, 病四肢困倦, 躁熱自汗, 氣短, 飲食減少, 欬嗽痰涎, 胷膈不利, 大便秘, 形容羸削, 一歲間更數醫不愈. 或曰:“明醫不如福醫. 某處某醫雖不精方書, 不明脈候, 看證極多, 治無不效, 人目之曰福醫. 諺云:‘饒你讀得王叔和, 不如我見病證多.’” 頗有可信, 試命治之. 醫至, 診其脈曰:“此病予飽諳矣, 治之必效.” 於肺腧各灸三七壯, 以蠲飲枳實丸消痰導滯. 不數服, 大便溏泄無度, 加腹痛, 食不進, 愈添困篤. 其子謂父曰:“病久瘦弱, 不任其藥.” 病劇遂卒. 冬予從軍回, 其父以告予, 予曰:“思<內經>云:‘形氣不足, 病氣不足, 此陰陽俱不足, 瀉之則重不足. 此陰陽俱竭, 血氣皆盡, 五臟空虛, 筋骨髓枯, 老者絕滅, 壯者不復矣. 故曰不足補之, 此其理也.’ 令嗣久病羸瘦, 乃形不足;氣短促, 乃氣不足;躁作時嗜臥, 四肢困倦, 懶言語, 乃氣血皆不足也. 補之惟恐不及, 反以小毒之劑瀉之, 虛之愈虛, 損之又損, 不死何待?” 賈君嘆息而去. 중략. 不精於醫, 不通於脈, 不觀諸經方本草, 乃以命通運達而號爲福醫, 病家遂委命於庸人之手, 豈不痛哉? 噫! 醫者之福, 福於渠者也. 渠之福, 安能消病者之患焉? 世人不明此理, 而委命於福醫, 至於傷生喪命, 終不能悟, 此惑之甚者也. 悲夫!
(위생보감. 복의가 병을 치료하다. 병진년 가을에 초구현 가군의 둘째 아들이 27세였는데 사지가 노곤한 병을 앓았다. 번조하고 열이 나며 자한이 있고 숨이 짧으며, 음식 먹는 것이 줄고, 기침을 하는데 가래가 많았으며, 흉격이 개운하지 않고 대변보기가 힘들었다. 형체와 용모가 파리하게 여위어, 1년 사이에 몇 번이나 의사를 바꾸었지만 낫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명철한 의사는 복된 의사만 못합니다. 아무 곳 아무 의사는 비록 방서에 정통하지 못하고 맥후에 밝지 못하지만 증을 본 것이 극히 많으며, 치료해서 효과가 나지 않음이 없어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복의라 합니다. 속담에 ‘네가 아무리 왕숙화를 읽어봤자, 내가 병증을 많이 본 것만 못하다’하지 않습니까?” 하는데, 제법 그럴싸하므로 시험 삼아 치료하도록 명하였다.

의사가 와서 그 맥을 진찰한 다음 “이 병은 제가 지겹도록 잘 아니 치료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폐수에 각각 뜸을 7장씩 뜨고, 견음지실환으로 담을 삭이고 체한 것을 내리게 하였다. 몇 번 복용하지도 않았는데 대변이 묽은 설사로 한없이 나왔으며, 게다가 배가 아프고 음식을 못 먹어 더욱 괴롭고 위독해졌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앓은 지 오래되어 수척하고 약해져서 약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다.”라 하고, 병이 심해져 마침내 죽었다.

겨울에 내가 종군하던 곳에서 돌아왔는데, 그 아버지가 나에게 이것을 알리기에 내가 말하였다. “생각건대 <내경>에서 ‘형기가 부족하고 병기가 부족하면 이는 음양이 모두 부족한 것이니 사한다면 거듭 부족하게 된다. 이처럼 음양이 모두 고갈되고 혈기가 다 없어져 오장이 텅 비고 근골이 바짝 마르면, 노인은 목숨이 끊어지고 장년도 회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족한 것은 보해야 하니, 이것이 그 이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드님은 병을 오래 앓아 파리하고 수척했으니 바로 형이 부족한 것이고, 숨이 짧고 급했으니 바로 기가 부족한 것이며, 번조가 발작할 때 눕기를 좋아하고 사지가 노곤하고 말하기를 귀찮아하니 바로 기혈이 다 부족한 것입니다.
보하더라도 오직 충분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할 것인데, 도리어 약간 독이 있는 약으로 사하였다면, 허한 것이 더 허하게 되고 손상된 것이 더욱 손상되었으니 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가군은 탄식하고서 물러갔다. 중략. 의학에 정밀하지 못하고 맥에 통달하지 못하며 여러 경방과 본초를 보지 않았는데도 운이 좋다고 해서 복의라 부르며, 환자들이 마침내 용렬한 자의 손에 목숨을 맡기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아! 의사의 복이란 그 자신에게나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복이 어찌 환자의 병환을 없앨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이 이치를 밝히 알지 못해 복의에게 목숨을 맡겨서 생명을 잃는 데에 이르면서도 끝내 깨닫지 못하니, 이는 미혹됨이 심한 것이다. 슬프도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