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생 유골 못 찾아 순국 추정지 흙 들여오고 부인 유해 봉환
서울현충원서 합장식…'가짜 유족' 사건으로 가묘 멸실됐다 복원
[파이낸셜뉴스]
서울현충원서 합장식…'가짜 유족' 사건으로 가묘 멸실됐다 복원
국가보훈부는 14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최 선생 부부 합장식을 거행했다.
최재형 선생의 순국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가 마침내 고국의 묘에 함께 묻혔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추모사에서 "최재형 선생님과 같이 일신을 독립운동에 바치시고 그 곁에서 내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신 분들이 있어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합장식에는 최 선생의 유족들과 박민식 장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러일전쟁 이후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재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또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부인 최 엘레나 여사는 1897년 최재형 선생과 결혼해 8명의 자녀를 낳았고, 안중근 의사 순국 이후엔 그의 가족을 보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순국하면서 최 여사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고, 1922년 자본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됐다.
본래 최재형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돼 지금껏 빈터로 남아있었다.
정부는 1962년 최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후손을 자처하는 이의 요청에 따라 1970년 서울 현충원에 가묘를 건립했다.
그런데 1990년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이후 최 선생의 유족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이 실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음이 탄로 났다.
이후 서울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108호에 있던 최 지사의 가묘는 2006∼2009년 사이 멸실됐으나 유족은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희망했으나, 최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이후 유해를 찾을 수 없어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
이에 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해 지난달 시행됐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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