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공무원들 사이에서 이 무시무시한 말들이 떠돌고 있다. 해마다 자연재난 및 사회재난의 양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대처에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재난안전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대응을 잘하면 그만이고, 못하면 상상 이상의 거센 비판이 쏟아지면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비극적 단면이 내포돼 있다.
재난의 정확한 분석 및 예방 대응 복구의 적절한 조치보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한 임시미봉책 대책만 남발되고 있어서다. 특히 재해가 발생하면 지자체, 경찰, 소방 등 관련 기관들의 초동대응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하는데도 여기에 필요한 지원은 태부족이다. 가장 중요한 재난안전공무원들의 전문성 및 직무에 대한 사명감, 비상상황 시 적절한 판단, 충분한 인력 확보 등 재난대응에 필요한 자원은 말잔치로 끝나기 일쑤다. 재난대응 기관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다. 고작 1개팀이 각종 재해를 담당하지만 인력은 부족하고 잘못하면 법적 행정처벌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그러다 보니 재해부서로 발령나길 꺼리고 기피하는 문화가 저변에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재해업무의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휴직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윗선들은 재해책임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실무 담당자들만 책임을 져야 하는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한다. 실제 지난 2020년 부산 초량 지하차도 침수로 시민 3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실무 담당 공무원들이 기소되고 아직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만일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으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물론 본인이 낸 연금만 받을 수 있는 데다 변호사비만 1억원 넘게 소요돼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공무원이 소명의식을 갖고 재난대응에 임할 수 있을까. 특히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고위직들은 정작 자유로운 처지여서 재난안전 체계는 찢어진 그물망이나 다름없다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재난대응부서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1년 내내 초긴장 상태로 일하다 보니 삶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꿈꿀 수도 없고, 책임의 화살만 날아와 하루빨리 재난부서를 떠나고 싶은 심경"이라고 토로한다. 재난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1차관 소속 공무원과 재난관리본부장 소속 공무원들 간 장벽이 높아 재난부서로 선뜻 가려는 공무원이 드물 정도다. 재난부서로 이동하더라도 무슨 잘못을 범해 온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구조적 개혁은 외면한 채 현상유지를 위한 정책 개발의 변죽만 울리느라 바쁘다.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이런 대책으로 갈수록 긴박해지는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참사를 막을 수 있을지 아찔하다. 가장 주요한 현장공무원들의 근무여건 개선 및 사기진작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의 땜질처방으로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막을 수 없다.
김태경 전국부 선임기자 ktit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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