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일제강점기 중국 등지에서 일제 고위 인사 암살과 친일파 처단 등에 나섰던 이종암·이강훈·엄순봉(이명 엄형순) 선생이 202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3일 국가보훈부가 밝혔다.
보훈부에 따르면 이종암 선생은 1896년 대구 출생으로 1919년 11월 신흥무관학교 수료 뒤 동창들과 함께 1919년 11월 '의열단'을 창설, 국내외를 오가며 최수봉(이명 최경학) 선생의 1920년 12월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등 일본 고위 인사 암살 계획을 도왔다.
의열단 조직 정비 때 최고지도부 격인 5인 '기밀부'의 일원이 된 그는 국내 투쟁을 위한 요원으로서 1925년 7월 비밀리에 입국했으나, 그해 11월 경북 달성군에 은신해 있던 중 경북경찰부 소속 일제 경찰의 급습에 체포됐다.
살인미수·폭발물취체벌칙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투옥된 이종암 선생은 지병과 고문 후유증 때문에 1930년 5월23일 가출옥됐으나, 같은 달 29일 친형 집에서 숨을 거뒀다.
이강훈 선생은 1903년 강화도 김화군 출생으로 1919년 3월12일 '김화군 독립만세' 시위 참여를 이유로 일본 헌병들에 잡혔다가 풀려난 뒤 이듬해 2월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26년 김좌진 당시 신민부(북만주 지역에서 설립한 독립군) 군사위원장의 지령에 따라 함경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고, 1930년 4월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유기석·유자명 등 주도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비밀결사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강훈 선생은 이듬해 12월 중국·일본인 무정부주의자들과 합작해 만든 '항일구국연맹'에도 참여했다. 1933년 3월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주중국 일본공사 암살을 계획했다가 실패한 그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조국 광복 뒤인 1945년 10월 출소했다. 그는 1946년 백정기·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일본에서 발굴해 국내 봉환하는 데도 힘썼다.
1906년 경북 영양군에서 태어난 엄 선생은 1925년 9월 남만주로 망명, 안투(安圖)현에서 당시 한인학교 교사로 활동하던 이강훈 선생을 통해 김좌진 장군의 신민부에 합류했다.
이후 신민부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이 합작해 만든 '한족총연합회' 청년부 차장으로 활동하던 엄 선생은 상하이로 이동, 남화한인청년연맹·항일구국연맹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엄 선생은 1933년 5월 안경근·오면직·이달·이용준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 밀정 이종홍을 처단하고, 당시 '독립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옥관빈을 사살했다.
그러나 엄 선생은 1935년 3월 친일파 이용로를 처단한 뒤 중국 순경들에 붙잡혀 일본 경찰에 넘겨졌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그는 1938년 4월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돼 33세에 순국했다.
정부는 이들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이종암, 1963년 엄순봉, 1977년 이강훈 선생에게 각각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또는 서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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