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시장에 나온 올해 데미스 허사비스를 비롯해 샘 알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같은 세계 AI시장을 주도하는 기업가, 기술자, 과학자 350여명이 미국 AI안전센터와 함께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전염병이나 핵전쟁 위험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할 문제다"라는 한 문장의 짧고 강력한 성명서를 냈다.
AI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할 때마다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 나온다. 그것도 AI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당사자가 직접 신신당부한다. AI기술 전문가일수록 기존의 규범체계로는 AI와 함께하는 디지털 세상을 정의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 유엔총회에서 "디지털 심화 시대의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뉴욕구상을 발표한 뒤, 우리 정부가 지난달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다. AI뿐 아니라 디지털로 정의되는 새로운 사회에서 전 세계가 공동으로 번영해야 하는 기본원칙을 담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유와 권리, 공정한 접근과 기회균등,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사회를 규정하고 디지털시민의 권리는 물론 기업의 의무까지 정의한 그야말로 권리장전이다. 기존 국경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디지털사회의 권리와 책임을 모두 담아 법률들의 기본이 되는 법을 만든 것으로 전 세계 AI 전문가들이 바라던 새 규범의 틀을 잡은 것이니, 굉장한 일을 해냈다.
그런데 울림이 작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새로운 질서를 규정했는데, 아직 한국의 디지털 권리장전을 연구하고 있다는 연구소나 기업을 못 봤다. 유럽연합(EU)이 DSA(디지털 서비스법)나 GDPR(일반 데이터 보호규정) 같은 개별법 초안만 발표해도 전 세계가 술렁이던 것을 생각하면 디지털 권리장전이 진짜 권리장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당장 국내에서조차 디지털 권리장전을 만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에 어떤 부처가 손과 머리를 보태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외국 여러 나라들과 권리장전을 공유하기 위한 글로벌 회의는 어떻게 계획되는지도 알 길이 없다. 권리장전 이후에 교육, 의료, 노동, 저작권 분야의 개별법들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마스터플랜은 연구되고 있다는 소식이 없다.
괜한 걱정이면 좋겠다. 이미 지난해 대통령의 '뉴욕구상' 발표 이후부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다 세워졌다는 반박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가 공유할 디지털 신질서가 독백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디지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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