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예산안 합의보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가 속내라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말로는 예산안 처리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예산안 심의를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
예결위 심사시한인 11월 30일을 넘기면 다음 날인 12월 1일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되는 국회 선진화법을 여당이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민주당이 예산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아닌 '정쟁용 탄핵 본회의'로 변질시키려 한다고 본다. 여당은 예산안 처리 합의 없이는 결코 본회의 개의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오히려 여당이 이동관 위원장 보호를 위한 '방탄 전술'을 펴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여야가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는 바람에 불똥은 애먼 민생법안으로 튀었다.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끝에 법제사법위원회가 파행됐다. 이 때문에 법안이 본회의 가기 전 거쳐야 할 법사위에 민생법안들이 잔뜩 쌓여있다. 현재 100개 이상의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중에는 경제활성화 등 민생법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러자 민주당은 내친김에 원내다수당의 입법 권력을 앞세워 '단독 수정안'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윤석열 정부 예산 중 수조원대를 깎는 자체 수정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정부 안에서 약 2조원을 감액한 수정안을 내고 단독 처리 직전까지 갔다가 여야 막판 합의로 거둬들인 바 있다.
정치권도 법정처리시한을 넘길 걸 이미 예상이라도 하듯 지난 27일부터 '소소위'를 가동했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등 일부 인사만 참석하는 법외(法外) 기구다. 회의 자체가 비공개인 데다 회의록도 없다. 결국 밀실심사, 깜깜이심사, 나눠먹기심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속기록이 없으니 정치적 야합 가능성은 커진다. 결국 각 상임위 심사→예결위 종합심의라는 과정은 사실상 '없었던 일'이 되고 마는 셈이다.
수백조원대의 국민 혈세가 몇몇이 모인 테이블 위에서 짬짜미로 결정되는 건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여야 간 신경전으로 법정처리시한을 넘기는 경우 거의 그렇다. 2014년 이후 헌법이 규정한 법정 처리 데드라인을 지킨 적은 2014년과 2020년 단 두 번뿐이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법을 만드는 곳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얘기할 수 있나.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정책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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